나이는 40대가 넘었는데, 젠틀과는 거리가 멀며, 빌어먹고 살기 딱 좋은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앨범 한 장이 있습니다. 저는 이 앨범 한 장 보고 갑자기 현웃 터져서 입 밖으로 이런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크크크 이 새끼 뭐지? 약 빨고 음악 만들었나?"
그런데 앨범 표지와는 다르게 첫 트랙부터가 이름이 <실직 폐업 이혼 부채 자살 휴게실>이라는 타이틀입니다. 백현진 래퍼가 참여를 했는데, 그 독백이 아주 처절하고 힘겹습니다. 실험적이기도 한 이 음악의 정체는 재즈라고 말하기가 좀 부담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재즈라고 말할 수 있는 하나의 이유는 '김오키'라는 아티스트의 앨범이기 때문입니다.
김오키의 음악을 들어보면 색소폰이 색소폰의 음색으로만 비춰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뭐랄까. 색소폰의 비음악적인 요소가 많다고 해야 할까요. 마른 입술로 색소폰 리드를 붙잡는 소리 때문인지. 보다 쓸쓸하거나, 또는 매력적입니다. 사막을 걷는 느낌, 또는 축축한 느낌, 시적이고 몽환적인 파스텔 톤이 한꺼번에 중첩되는 느낌입니다.
파업, 자살, 실직... 이런 사회 문제의식을 이야기하면서도 앨범을 웃기게 찍었던 이유를 김오키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그렇게 진지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나날이 사회는 발전하고 경기는 계속 어려워지고, 어렵다는 가정하에 이루어지는 착취는 날로 더해져서, 이런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는 김오키의 발언은. 아티스트로서의 소신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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