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길은 어디에나 있는 여자들 이야기로 어디에도 없는 장르에 이르렀다.
-편혜영(소설가)
뜨거운 주목
우리나라 소설계에서 여성이 이 시대 2020년대에 각광받기란 쉽지 않다. <82년생 김지영>을 시작으로 여성 시각을 그린 이야기는 '난 이제껏 평등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어.'를 틀 안에 두고 시작하기 때문에 몇몇 남성들의 시각에서 볼 때 나처럼 여성에 대한 시각을 다채롭게 이어가기 위해 '그랬구나.' 혹은 '이제부터 평등하게' 같은 생각으로 소설을 바라보는데, 그것이 계속됨에 따라 지친다. 하여 결국 조남주, 편혜영, 김금희, 손보미 같은 작가들의 책을 넌지시 보고 있노라면 '또 여성 프레임의 이야기이겠지.' 하며 조금 피곤해진다. 단연코 말하건대 나는 여성이 일어나는 시각을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이야기하는 편은 더더욱 아니다. 이 점은 짚고 넘어간다.
이번 강화길의 신작 소설 <화이트 호스>는 이름만큼이나 깐깐하고 깨끗하며 투철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일들에 대해서 먼저 알아채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여성들이여, 당신은 잘못이 없다. 이제 일어나라.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에 주목된다.
섬뜩했다. 분명 내 딸의 목소리였지만, 마치 누군가의 말을 대신 하고 있는 듯했다. 한동안 그 기분이 가시지 않았고, 솔직히 좀 두려웠다. 아이를 이렇게 키우는 것이 옳은 걸까.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들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단편집 <손> 에서
여성과 남성의 프레임을 벗어나는 섬뜩한 스릴러
큰 저택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살인사건은 어디 조용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읽기 좋고, 1980년대에 누아르 장르는 우리나라 남성들이 좋아할 법 하지만, 여성을 다룬 날카롭고 편협한 시각을 섬뜩하게 표현한 작품은 드물다. 분명 여성이 화자가 되었을 때 남성이 모르는 시각들이 존재한다. 하여 현대문학이 여성이 화자가 되는 소설들을 띄워주고 있는 것이리라. 이것이 비단 '사람들이 많이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인 것이다. 강화길의 <화이트 호스>는 공감을 넘어서는 섬뜩함이 연발된다.
그런 말들이 너무 달콤해서, 그런 것들에 자꾸 의지하며 덧없는 시간을 보내온 것 같아. 끊임없이 감정을 소모하며 당 한 순간의 편안함도 없이. 그런데 이제는 그런 시간을 영원히 갖게 된 거야. 영원히 이렇게 지내야 한다는 거지. 무엇보다, "삶이란, 누군가에게 선물 박을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야."
-단편집 <카밀라> 에서
강화길은
강화길 소설가는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괜찮은 사람> 장편소설로는 <다른 사람>을 썼다. 2017년에 젊은 작가상을 갑자기 수상하면서, 2020년에 젊은작가상을 다시한 번 수상한다. 젊은작가상에 후보로 올라 단행본이 만들어지면 소설애호가들은 그 소설집을 단연 훅 훑어보게 되는데, 강화길의 <음복>은 2020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첫 번째로 등록되어있다. 김봉곤 다음으로 떠오르는 슈퍼루키가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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