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어느 사람에게는 중독과도 같다. 봄이 됐으니 오키나와, 여름이 됐으니 핀란드, 가을이 됐으니 오스트레일리아, 겨울이 됐으니 발리…. 기분이 울적하니까 여행. 기분전환으로 여행. 여행은 언제나 기분전환으로 따라오는 요소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 나가서 개고생이라고, 산책은 좋아해도 어디 멀리 가서 뜻밖에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기 싫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여행에서는 그 걱정이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첫 해외여행은 아내와의 신혼여행이었고, 지금도 해외여행은 소리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렇게 여행은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여행의 이유>가 재미있었던 것은 그저 김영하 작가의 입담이었다. 2015년 중국에서 추방당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김영하 작가의 여행에서 이는 누가 봐도 예상치 못한 전개다. 아니, 누가 여행에세이를 쓰면서 자신이 추방당한 이야기를 첫 장으로 잡겠는가. 그만큼 김영하 작가의 이번 수필은 매우 독특하다.
우리는 항상 어떤 경험을 기대하고 여행을 간다. 하지만 여행은 대부분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그렇지 않은가. 작가는 이런 경험 자체가 '여행의 의미'라고 말한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뜻밖에 다양한 일들. 처음과는 다른, 기대했던 것과도 다른 강렬한 경험들 말이다.
그것은 비단 여행뿐만 아니라 소설의 플롯과도 아주 밀접하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자신만의 다짐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바랐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면서 내면적인 목표와 마주하게 되고, 결국 생각과는 다르게 여행했지만 내면적인 목표를 이루게 된다. 이것이 여행과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큰 공감이었다. 대부분 환상적인 여행을 꿈꾸며 3박 4일 또는 5박 6일을 맞이하지만 크게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계획 외의 뜻밖에 과정에서 가장 큰 영감이나 깨달음을 얻는다. 이렇듯, 여행은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 내 인생을, 나라는 사람을 얼마나 깊게 통찰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행의 이유>에서는 작가 자신이 어떤 여행에서, 또는 어떤 환경에서 소설을 썼는지에 대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하여 김영하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 나는 더 재미있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다.
또 김영하 작가는 모두 알다시피 <알쓸신잡>을 코너를 하면서 자신이 여행하는 모든 것을 촬영한다. 작가는 거기서 매우 기이한 점을 발견한다. 어찌어찌 촬영은 하는데, 자신이 어떻게 편집되는지 모르는 것이다. 패널들이 한 지역을 각자 여행하고 저녁에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 또 이것이 어떻게 편집될지 모르는 점. 이점을 김영하 작가는 '굉장히 카프카 적이다'라고 말한다.
카프카의 <성>에서는 주인공 K가 금방이라도 닿은 것 같은 성에 들어가려고 하나, 어째선지 성에 다가갈수록 더 멀어지는 소설이다. "성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면 "여기가 성이다.", "밖이다.", "조금만 가면 있다."라고 하는데, 이런 카프카적인 상황과 비슷하게. 촬영하는 사람도, 여행지를 스스로 디뎌본 작가도, 편집자도 여행지를 모르는 것이다. 오히려 시청자가 가장 여행하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 우리가 수많은 여행에서 이와 여행 프로그램은 이런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직접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하고. 그렇게 해서 실제로 여행을 가면 간접의 체험과 직접의 체험이 합쳐지는 것이다.
여행에 대한 사진 한 장 없고, 여행지에 대한 주변 정보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이토록 흥미로운 여행 수필은 근래에 없었다. 후에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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