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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 소설 에세이

허지웅 4년만의 신간 에세이. 악성림프종이 만든 그의 또다른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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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2.0, 프리미어, GQ에서 잡지 기사로 일했고, JTBC 예능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해 남녀 젊은 층에 큰 사랑을 받게 된 허지웅. 이어서 <버티는 삶에 관하여> <나의 친애하는 적> 소설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을 쓰면서 여전히 글 쓰는 사람으로서 그 존 재력을 표현했던 허지웅이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다.

 

 

이번 2020년에 발행된 허지웅의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은 허지웅이 2018년에 악성림프종이라는 큰 병에 걸리게 된 뒤, 인생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갖고 쓰게 된 에세이이다. 혈액암을 지니고 투병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표현해내는 방법이 그것뿐이라 생각하여 혼신의 힘을 다 한 것이 놀랍다 생각이 든다. 

 

망했는데. 세 번째 항암 치료를 하고 나흘째 되는 날 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첫문장

 

당시에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온몸이 부어올라서 연필 하나 집을 수 없었고, 손발 끝이 저려오면서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밤마다 덜 아프기를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무종교인의 심정이란 그 어느 독자도 체감하지 못할 것 같았다. 계속되는 고통 끝에 허지웅은 더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휩싸였던 것 같다. 고통이 끝날 듯 안 끝날듯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하루를 살아가던 지난날들을 다시 생각하며 집필한 이번 에세이는 초반부가 강렬하고 처절하다. 

 

고통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고통이란 계량화되지 않고, 비교할 수도 없으며, 천 명에게 천 가지의 천장과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허지웅이 마녀사냥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유명인이 되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고를 리가 없겠다. 하지만 허지웅의 책이 기대가 가고, 또 이 책을 구매하게 만드는 이유는 비단 유명인이어서가 아니다. 이전에 <버티는 삶에 관하여> <나의 친애하는 적> 등의 에세이를 통해 그의 날렵하고 예리한 시선이 독자들이 항상 다시 찾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시선이 예리하고 설명도 감탄스러운 허지웅이 한동안 시련을 딛고 쓴 에세이는 과연. 어떤 느낌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감이라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열 보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반보가 필요하다. 그보다 더하거나 덜하면 둘 사이를 잇고 있는 다리가 붕괴된다. 인간관계란 그 거리감을 셈하는 일이다. 이 거리감에 대해 생각하면 나는 늘 전자기력을 떠올린다. 세상에는 인력과 강력, 약력, 그리고 전자기력 이렇게 네 가지 힘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내 손이 키보드를 통과하지 않고 누를 수 있는 건 전자기력 때문이다. 전자기력은 '나'를 '나'라는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만든다. 이를테면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나 <에반게리온>의 AT필드처럼 내가 나라는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인 것이다. 너무 외롭다고 해서 아예 걷어버리면 나라는 형태가 허물어진다. 반대로 타인이 너무 두려워 보호막으로 두텁게 에워싸면 속절없이 너무 멀어져 버린다. 요컨대 타인과의 거리라는 것은 바로 나의 보호막과 너의 보호막의 두께를 어림잡아 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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