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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문 고전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주인공 빌런. 가정교육이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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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아내가 갑자기 내게 와서 묻는다. 무슨 책 읽어? 하고는 표지를 들춰본다. 눈썹이 희한하게 올라간다. 뭐야. 이상해. 이 책 나온 건 알고 있었지만 여보 손에 들어갈 줄은 몰랐어. 그래, 나도 이 책을 잡고 있을 줄은 몰랐다. 가슴 한편에 궁금했었다. 저자 수 클리볼드가 왜 이런 이름으로 책을 냈는지, 대체 왜 이런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제목임에도, 어쩐지 실낱같은 깨달음은 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달까. 보면 안 되는 금서를 저만치 놔두고 계속 마음속에 두는 것이 탐탁지 않아 결국 집어 들었다. 

 

이 책은 본인이 나쁜 엄마임을 증명하려고 쓴 것도 아니며, 간증 같은 것으로 책을 벌자는 의미도 아니었다. 일부 그런 뉘앙스가 있었지만 결국은 아무 문제 없는 평화로운 가정에서도 가해자는 생긴다는 위험을 경고하는 책이었다. 미국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열 세명의 사망자와 스물네 명의 부상자를 만들어낸 두 명의 살인자 중 한 명의 엄마가 저자인 이 책은, 엄마의 입장에서 뇌질환과 정신질환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각인하고 계속 주의해서 보살펴도 알아채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를 위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에서는 얼마나 도와주는지를 세세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책에 실린 가해자 딜런을 보고있자면 자연스레 이 책에 자신의 아들을 담아놓았을 저자이자 가해자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의 얼굴이 상상된다. 생각만으로도 슬프고 아찔하여 고개가 절로 흔들린다. 마음이 얼마나 절벽 같고 칠흑 같을까. 당신이 선물한 트렌치코트를 입고 범죄를 준비하던 모습과, 가장 자연스럽고 멋진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몇 장의 사진을 연달아 찍었던 그 사진이 타임스 표지에 <이웃집 악마들>이라는 문구로 낙인찍혔을 때. 수 클리볼드는 아마 안 본 눈을 살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몇 푼을 주고라도 구매했을 것이다. 

 

내 눈썹이 또 약간 비틀어 올라간 것은 딜런이 들어간 사진들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범죄자 같지도 않으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서양의 남자아이였을 뿐이었다. 불량배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 않다. 그런 아이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부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니, 다시 봐도 아닐 거야, 한 번쯤 부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된다고 그렇게 얘기했던 입술이 또 있었던 것 같다.

 

살인을 저지르던 날 딜런은 함께한 공범과 함께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항상 잘해줘, 그건 건드리고 싶지 않아." 정상이었다. 딜런이 부모를 보는 눈은 지극히 정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딜런의 가슴속에 응어리가 있었던 것은 부모에게서, 흔한 가정 파탄으로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짚어들 생각을 하지 않은 나의 와이프마저 이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자녀를 방치한 가정에서의 무책임한 가정교육이 이런 파괴범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들춰보지 못했다면 끝까지 표지만 보고도 그런 생각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딜런과 그의 부모는 누가 봐도 최고였다. 딜런의 엄마는 꼬박꼬박 일기를 쓰고 가끔은 엉터리 시를 쓰며 행복에 나날을 보냈고. 아들 딜런은 종이접기, 블록 맞추기, 야구단 활동에 수학과 체스를 잘하는 똘망진 영재였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무안을 당하면 크게 속상해 화가 풀릴 때까지 어디론가 혼자 숨어 감정이 사그라들 때까지 머무르곤 했지만 이 또한 아이들의 아무런 기질 중에, 그러니까 쉬이 지나갈 수 있는 요건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딜런을 이렇게 폭파시켰을까. 무엇이 딜런의 머리를 들쑤시개로 쑤셔버렸던 것일까. 사실 이 부분에서 가장 감정이 요동쳤는데, 일기는 자신이 미처 실행하지 못한 것이나 이룰 수 없는 일들을 주로 적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사춘기 시절에 이런 일기를 쓴 적이 있을 것이다. '죽여버리고 싶다. 밥상을 뒤엎고 싶다. 뛰어내리고 싶다. 다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러한 비관적이며 폭력적인 생각들을 딜런의 가족에서는 방관되었던 것이다. 진즉에 위험한 시기가 오고 있었는데, 딜런의 부모는 그저 사춘기에 지나가는 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술 취해서 매번 나에게 죽고 싶다며 술자리를 함께하자던 대학 선배가 생각났다. 결국 내가 마지막 목격인이 되었고 그다음 날 새벽에 대학 선배는 목을 메달았다. 전조증상은 어디에나 뿌려져 있다. 그것도 골고루. 싸늘한 시체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올 때 그저 '미안하다. 고마웠다. 죽고 싶었다. 잘 지내라.'라는 편지만 남았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두고두고 슬픔이 된다. 

 

폭력적이고 괴팍한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은 가정교육에 문제라고 다들 생각한다. 요즘 제대로 된 가정을 만나보기가 힘들다. 엄마, 아빠가 있는 가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엄마 아빠가 건실히 있다 치자. 그마저도 부모가 서로 의견을 존중하는 관계가 아니라 엄마는 어디 우주에서 별지구로 내려와 남편을 돕는 시다바리 취급당하고 남편이 무조건 왕인 가정이 많다. 그러니 이 관념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청소년기에 아이는 결코 가정교육에 국한해선 안된다. 가정이 화목하더라도 부모님이 바라던 대로 아이는 자라지 않는다. 부모가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할 지라도, 자신이 낳은 아이는 죽었다 깨나도 모른다. 그리고 모르는 것이 맞다. 그러니 사실을 인정하고 무언가 폭발하기 전에 둥글게 대하고 날카롭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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