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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 소설 에세이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줄거리, 그대로 알려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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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정세랑의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는 말그대로 소설집입니다. 이 안에 다채로운 소설이 엮여있으며, 이중 하나가 옥상에서 만나요 입니다. 간혹 장편소설로 착각하시는 분들 있는데, 착오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줄거리

스포츠 신문 회사에서 일하는 나는 룸살롱 접대와 상사의 성희롱 같은 업무 폭력에 하루 종일 시달립니다. 그럼에도 경리부의 명희 언니, 편집 기자 소연 언니, 제작물류부 예진 언니, 3명의 언니와 회사에서 함께할 수 있어서 큰 힘이 되었는데요.

 

갑자기 이 언니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합니다. 충격적인 건 명희 언니가 두꺼운 가죽점퍼를 입은 90년대 형사 아저씨를 데려오고 소연 언니가 400을 친다는 준 프로급 당구돌이를 데려오고 예진 언니가 전통악기를 만든다는 장구돌이를 데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나는 앞에 둘은 그렇다 쳐도, 마지막은 대체 어디서 만났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죠.

 

 

언니들은 퇴사를 하고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하거나 금연을 하고 필라테스를 배우는 등 삶을 바꿔나가기 시작합니다. 혼자서 우울감에 빠진 나는 오랜만에 메신저에 로그인한 예진 언니에게 매달리듯 묻습니다.

 

-나 빼고 미팅이라도 나갔어요?

 

별거 아닌 물음이었는데 언니는 저편에서 뭔가를 한참 썼다 지웠다 합니다. 결국 만나서 얘기해 주겠다며 다음을 기약하고, 시간을 맞춰 오랜만에 네 사람이 다 모입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주문서야.”

 

"고려대에 뭘 주문한다고요?“

 

나는 언니들이 단체로 맛이 갔나 싶었습니다. 식민지 시대 초기에 인쇄한 것 같은 이 출판물은 청계천 쪽 헌책방에서 구했다는데, 이름도 [규중조녀비서閨中操女祕書]라는 말도 안 되는 제목이었습니다.

 

규중 (閨中) 부녀자가 거처하는 방.

操 잡을 조; 깨끗이 가지는 몸과 굳게 잡은 마음.

비서(祕書) 기밀문서

 

학문에 뜻이 없고 주색잡기만 하는 장남을 정신 차리게 하는 주문, 엉덩이가 가벼운 막내딸을 처신하게 하는 주문, 입에 가벼운 동네 이웃에게 갚아주는 주문 등, 주문서라기보다는 전근대 여성들의 고민을 모아둔 책 같았는데, 언니들이 포스트잇을 붙여둔 <온 천지에 오로지 한 명뿐인 운명의 혼인 상대를 소환하는 방법> 을 펼쳐봅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주문서를 나는 믿어보기로 하고 일요일 저녁 회사 옥상에 올라가 문을 잠그고 주문서대로 합니다. 주문서에는 요구하지 않았지만 목욕재계도 하고, 새로 산 속옷을 입고 그저 신분상승을 위해 간절하고 신중하게 임합니다.

 

주문이 끝났는데 번개도 치지 않고 빛도 소리도 없어서 실패한 듯 싶어 며칠이나 지났을까 까놓고 안먹은 가방속의 눅눅한 과자를 꺼내 먹다가 한숨을 쉬고 소환진을 치우려는데

 

거기에 한 남자가 소환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남자 때문에 나는 비명을 지르고 도망갑니다. 계단실 뒤로 미친 듯이 뛰어가 숨어서 예진 언니에게 전화를 겁니다.

 

”언니! 사람이 소환되는 거 맞아요?“

 

언니는 밥을 먹는 듯 뭔가를 씹고 있습니다.

 

"에이~ 남자는 천천히 사람 만드는 거야. 놈팡이에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지”

 

"그게 아니라 외모가“

 

”왜? 그렇게 못생겼어?“

 

”일단 사람이 아닌데요?“

 

 

웬 정승이 나타난 겁니다. 이 정승은 검은색이었고 말도 안 하고 뭔가 나무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걸 버리자니 책임의식도 있고, 가져가자니 낭패고 고민하다가 결국엔 택시를 불러 가져갑니다. 공중에 떠있는 듯도 한 이 나무사람을 집에 두고 또 지난한 고민 끝에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 봐요.’ 하는데

 

갑자기 정승이 두 손을 뻗더니 내 머리를 감싸고 입술을 정수리에 데고 빨아올리기 시작합니다. 그로 인해 나는 쇼크로 기절합니다. 다음 날 아침 놀랍게도 몸이 가뿐해짐을 느낍니다. 몸의 모든 독소, 노폐물, 어찌저찌 먹었던 중금속 성분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고 스트레칭도 안 했는데 온몸이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져 있습니다. 나무 정승에게 가까이 다가가보니, 왠지 윤기가 돌아 보였습니다. 잘 먹은 것처럼 말이죠. 남편은 절망을 빨아먹는 존재였습니다.

 

 

하여 나는 매일 저녁 남편에게 정수리를 맡깁니다. 하지만 남편은 점점 더 배고파했습니다. 처음에는 평생 쌓인 절망을 먹였으니 배불렀겠지만 하루치 절망은 가루약 한 봉지만큼도 안될 것이어서 매번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고 필름을 끊어놓고 집으로 끌고 와 그들의 절망들을 남편에게 먹여주기 시작합니다.

 

점점 인맥이 바닥나자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전공을 고릅니다. 힘겹게 심리상담사 자격들을 따고 한적한 소도시로 이사를 하죠. 그곳에서 나는 청소년센터에서 일하게 됩니다. 소도시의 청소년들의 절망을 먹고 남편은 오동통하니 살이 찝니다.

 

나는 이 기나긴 이야기를 편지로 적어서 회사 옥상 실외기 아래에 편지와 규서를 방수처리하여 붙여놓습니다. 부디 이 편지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너만의 기이한 수단이기를. 바라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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