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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 소설 에세이

마포구 광흥창역 구수동 창업의 고통. (현수동 빵집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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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 구수동 남서쪽에는 하은이네 어머니가 운영하는 P프랜차이즈 빵집이 있습니다. 근처 대형마트에도 마트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빵집이 있었는데, 이 마트가 2주에 한 번씩 쉬는 일요일이면 하은이네 빵집은 매출이 3030만 원씩 올랐죠. 그런데 마트가 리뉴얼을 하면서 빵집을 없애기 시작해 하은이네 빵집은 흥이 납니다..

 

곧 있으면 우리 이제 월 900이네

차 바꿔도 되겠네

 

그런데 프랜차이즈 본사의 영업 대리가 하중동 사거리 북동쪽에 BB 프랜차이즈가 생길 예정이라고 말해줍니다. 경쟁업체가 생긴 거죠. 하은이네 빵집보다 BB 프랜차이즈 빵집이 지하철역과 조금 더 가깝기도 했고, 버스정류장 앞이기도 하니, 하은이네는 브랜드는 약해도 목이 좋네라며 티카티카 합니다.

하지만 정작 도로 건너 자기네들 맞은편에도 새로운 빵집이 들어선다는 것을 하은이네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맞은 편 빵집이 문을 열고, 이틀 뒤에 예견했던 BB 프랜차이즈 빵집의 영업이 시작되니, 순식간에 삼파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게다가 맞은편 가게는 이전까지 하은이네 어머니도, P프랜차이즈 본사 대리도 전혀 본 적 없는 형태의 빵집이었던 것입니다.

 

제빵 경력 40년에 평생 빵집을 운영한 순임 씨와 그녀의 남편은 네다섯 평쯤 되는 작은 공간에 빵집을 차렸습니다. 이리저리 이사 다니면서 빵을 구워봤지만 지금 온 곳이 가장 작은 공간이었죠.

 

남편이 마음이 급해서 간판도 없이 빵을 굽기 시작하고 보름 뒤에야 상호를 달기 시작했다는 그 간판 이름은 힐스테이트 베이커리’. 간판 걸기 전엔 붉은 매직펜으로 홍보문구를 종이에 적기 시작했는데,

 

방부제를 넣지 않아 많이 먹어도 더부룩하지 않고 빨 트림이 나지 않는 빵

좋은 재료로 직접 반죽하고 구워서 아이들이 좋아해요. 아토피 걱정 없음

제빵 경력 50. 대한과자협회 부회장, 관악구 과자협회장 역임

 

그렇게 써붙이고 나열한 빵들은 단팥빵, 크림빵, 소보로빵, 찹쌀 도넛이 500.

크루아상 세 개와 찹쌀 꽈배기와 아몬드크림 도넛은1000.

유기농 모닝빵은 10개 묶음에 3000원으로,

저렴한 가격을 어필하며 빵을 팔기 시작합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오픈한 B프랜차이즈 주영이네 가게는 오픈 첫날부터 행사가 시작됩니다.

개장 기념으로 식빵을 반값에 팔고,

어떤 제품을 사건 아메리카노를 무료로 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본사에서 나온 지원 인력들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계산을 도왔습니다.

정작 주영이와 아빠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인력들에게 굽실굽실하며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는데,

빵은 본래 바코드가 없잖아요? 없어서 어느빵이 무슨 빵인지 구별을 못했고 계산조차 어려웠기 때문이죠.

 

해서 밤마다 아빠는 치아바타, 캄파뉴, 등등 낯선 이름들을 외우려 했고,,

주영은 얼결에 커피 내리는 법과 과일 주스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엄마는 그저 가게에 들어온 손님을 졸졸 따라다녔고요.

 

여름이 오고 사람들이 빵을 사 먹으러 오지 않으면서 결국 세 빵집 모두 적자 구도로 돌입합니다. 게다가 모두 경쟁적으로 할인하는 바람에 함께 죽는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요. 빵 자체가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윤도 박한데, 상대 빵집은 방부제가 많다느니 곰팡이가 핀다느니 하며 고객에게 헐뜯기 대응까지 하니, 골은 더 깊어만 갑니다.

 

 

 

이어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하는 세 빵 집중에 BB 프랜차이즈 빵집은 여러 가지 행사를 내걸어 사람들을 호객합니다. 멤버십 카드와 마일리지 제도가 일전에 있었고,

이동통신사와 제휴 포인트 카드들이 있었고,

스탬프 쿠폰이 있고,

모바일 쿠폰이 있는데,

모바일 쿠폰 안에 소셜 커머스 쿠폰이 있고, 또 선물 쿠폰이 있고,

이것들은 또 특정 상품을 구입할 때만 쓸 수 있고,

특정 시간에 쓸 수 있고,

특정 지역에서만 쓸 수 있거나,

같이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이 있고,

그럴 수 없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비싼 빵을 싸게 사는 듯한 환상을 주기 위해 마케팅은 신나게 뿌려놓고 직원들의 노동을 갈아 넣는 꼴인데,

본사는 매일 아침마다 복잡한 내용의 모바일 쿠폰을 뿌렸고, 사람들은 휴대폰을 들고 가게를 찾아옵니다.

 

하루는 쿠폰으로 자신이 받아야 할 빵이 아닌 다른 빵을 받았다며 항의하는 고객에게 전화를 받고, 주영은 환불해드리지만, 제대로 사과를 받지 못했다며 고객은 본사에 항의 전화를 걸고,

점장인 주영의 아버지는 케이크를 들고 고객의 집까지 찾아 나서게 됩니다.

 

반면 하은이네 빵집인 P프랜차이즈 빵집은 수도권 전체 매장 실적 꼴찌가 되었습니다. 하여 본사에서 특별팀을 파견하게 되는데,

 

매장 밖으로 어닝을 달고 네이블을 설치해서 시식코너를 만들고,

본사가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이 와서 인형탈을 쓰고 춤을 추고,

전진 배치니 중앙 배치니 하는 진열에 따라서 빵 진열 순서를 바꾸고,

진열대를 사진으로 남겨 앱으로 전송해서 확인받고,,

몇 시에는 어떤 빵

몇 시에는 어떤 빵 굽는 순서까지 지정합니다.

몸으로 뛰면서 손님은 늘어나긴 했는데, 이윤은 늘지 않자 끝내 하은이네 엄마는 폭발합니다.

“이럴 거면.”

이건 계약 위반인데요,”

계약 위반이고 뭐고, 가져가요!”

 

또 한 편 힐스테이트 베이커리는 부부와의 불화로 이어집니다.

마누라가 늦게 오는 바람에 빵을 다 태워 먹었네

당신이 빵을 태운 게 왜 내 탓이에요?

내가 손님 접대하느라 오븐 옆에 있지 못하니 그렇잖아! 바쁜 시간인데!

내가 놀다 왔어요? 당신 옷 빨고 다리미로 다리느라 늦었어요! 당신이 걸치는 가운들 가만히 놔두면 뭐 저절로 빳빳해지는 줄 알죠?

옷은 당신이 빨아? 세탁기가 빨지?

밀가루 반죽이랑 계란 물이랑 초콜릿 묻은 옷이 세탁기로 빨아지는 줄 알아요? 이거 내가 락스로 애벌빨래 하는 거예요! 이런 옷들은 세탁소에서도 안 받아 줘요!

어디서 여편네가 말대꾸야?

화내지 말아요! 왜 나한테 소리 질러요? 화내지 않기로 약속했잖아요??

 

순임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칼국수를 먹고 영화를 보러 가고 집으로 돌아가 기분을 살리기 위해 흥얼거리며 걸레질을 합니다. 남편은 자정 가까운 시각에 퇴근해 사과의 의미로 순임에게 케이크를 주며 사과하지만, 순임은 말합니다. 이제 빵집은 그만하겠다고.

 

 

이제 무한경쟁을 마치기 위해 주영은 하은의 빵집을 방문합니다. 오픈 시간은 같으나 마감시간은 정해지지 않아 서로 경쟁하기 위해 새벽 1시에나1 문을 닫았던 지옥스런 빵집 생활에 패턴을 잡기 위함이었습니다.

주영 : 요 앞에 힐스테이트 베이커리 문 닫은 거 아시죠.

하은 : 마주 보고 있는 가게니까 당연히 알죠.

이제 이 동네 빵집이 저희 두 곳뿐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도 문 닫는 시간을 좀 합의하면 어떨까 해서요.. 그쪽 프랜차이즈도 닫는 시간은 점주 권한인가요?

네 저희도 매장에서 정해요. 근데 그건 사장님한테 물어봐야 해요..

따님 아니세요?

그렇긴 한데 저희는 공동 운영이 아니고 정말 어머니가 다 결정하시고 저는 월급도 받거든요.

좋아서 이 일 하시는 거... 아니죠?

해 본 사람 중에 누가 이 장사를 좋아하겠어요.

저희는 아버지 퇴직금 털어서 하는 거예요.. 이거 망하면 우리 가족 길거리에 나가야 돼요.

저희 집이라고 다를 거 없어요. 지금은 본사에서 인테리어 공사하라고 압박 와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힐스테이트 베이커리 망했으니 숨 돌리실 수 있잖아요. 잠 모자라지 않으세요? 같이 11시에 퇴근하면 좋지 않을까요?

그건 저희가 손해 같은데요.. 그쪽 가게 생기고 저희는 아침 손님 줄었어요. 저희만 손해 보는 거 아닌가요?

저희가 빼앗아 간 거 아니에요. 아침마다 광흥창역 앞에 다마스 타고 와서 샌드위치 파는 젊은 부부 있는 거 아세요? 샌드위치를 천 원 천오백 원에 파는데 사람들 엄청 사가요. 바퀴 달린 장바구니에 김밥 담아 와서 파는 아주머니도 있어요.

그건 몰랐네요...

빵 파는 곳도 늘었잖아요, 커피점도 팔고, 생과일주스점에서도 베이글 팔고, 지하철 역 옆에도 편의점 생겼잖아요. 거기서도 카페 코너 있어서 멜론빵이랑 타르트 같은 거 팔아요.

그건 알고 있죠.

제가 보니까 이건 답이 없어요. 이 콩알만 한 단지에 주민들 노리고 너도 나도 들어와서 건물주랑 간판업자들 배만 불려주다가 만신창이 돼서 나가는 거예요. 밤 몇 시까지 문을 열어 놓는다고 달라질 게 없다니까요.

그래도 남은 하나가 되어 보겠다고 이렇게 버티는 거 아닌가요.

그게 정말 우리 손에 달린 일 맞아요? 전 잘 모르겠어요. 이건 저희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저희 집이나 이 집이나 장사 잘되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그러면 또 여기 장사 잘 되는 곳이구나 하고 옆에 빵집 또 생겨요. 틀림 없어요. 가게가 망할지 안 망할지는 그냥 다 운인 거 같고요.

 

그렇게 해서 주영은 협상 끝에 매장을 나옵니다.

 

오늘 이야기한 단편소설은 장강명의 단편소설 [현수동 빵집 삼국지]였습니다.

 

 

 

산 자들:장강명 연작소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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