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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장수풍뎅이 키우기.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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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샀을까. 장수풍뎅이.

 

아들의 곤충 사랑이 이렇게나 지극해질 줄 몰랐다. 처음 시작은 아마도 전집에서부터 였을 것이다. <내 친구 과학 공룡>이라는 유아 과학 전집에 [와글와글 곤충운동회]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을 한 번 읽어주고 나니 곤충에 대한 궁금증이 엄청 커져버린 것이다. 대부분의 아들 관심사가 어디로 가는지 아들을 키우는 부모는 알고 있을 것이다. 처음엔 자동차, 나중엔 공룡 또는 공으로. 혹은 로봇으로 관심사가 바뀌거나, 끝까지 자동차를 고수하는 남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 아들은 특이했다. 자동차에서 곤충으로 가는 거야 뭐, 많은 아이들이 관심을 바꾸는데 하나겠지 뭐, 하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아이가 놀이터에 로봇을 들고 오는데도 관심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개미와 거미, 강아지들만 쳐다보고 있으니 말이다. 

 

하여 나는 와이프와의 상의 끝에 장수풍뎅이를 집에 들이기로 했다. 벌레라면 질색팔색하는 와이프인데, 그래서 내가 고슴도치를 키워보겠다는 말에도 절대 안 된다며 눈을 부릅뜨던 와이프인데, 이상하게도 장수풍뎅이는 허용했다. 고슴도치는 가시를 돋으면 아이가 만지다가 다칠 거라나 뭐라나. 사실 고슴도치는 주인이 누군지 파악하고 그 주인이 잘해주기만 한다면 그만큼 보드라운 털도 없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근처 홈플러스에서 장수풍뎅이를 사려다가 꽤 나중에 입고된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넷을 뒤져봤다. 후에 인터엣에서 암컷과 수컷을 동시에 주며, 채집 집과 젤리, 흙까지 주는 '장수풍뎅이 키트 세트'를 약 4만 원에 구매했다. 

 

놀라웠다. 생물이 배송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 장수풍뎅이가 흙 속에서 배달이 되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배송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수풍뎅이는 대부분을 땅을 파서 흙 속에서 있는 순간이 굉장히 많고, 밤에 주로 활동한다. 게다가 날갯짓도 하는데, 새벽마다 채집망에 대가리를 툭툭 박는소리까지 들려 가끔 깨곤 하니, 얼마나 대가리를 박아대는지 독자들은 알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이 장수풍뎅이가 3개월밖에 못 산다니. 왜 3개월밖에 못 사는지 알 것도 같다. 대가리 박는 소리가 신새벽에 너무 경쾌하다. 자꾸 도둑이 들었나 깬다.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장수풍뎅이는 애벌레를 낳는데 거의 50마리 정도의 애벌레를 배출하며, 그 애벌레 생김새 또한 매우. 징그럽다는 것이다. 이것이 1령, 2령, 3령을 거쳐서 부화하면 장수풍뎅이가 되는데. 나는 결코, 장수풍뎅이를 50마리 키울 자신이 없는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겠거니 구입한 장수풍뎅이는 실제로 낮에는 활동하지도 않아 보이지도 않으며, 가끔 아침에 곤충 먹이용 젤리를 먹는 모습을 보긴 하지만 실제로 볼 때 아이는 생각처럼 놀라거나 반가워하지도 않고. 이 기어 다니는 벌레는 밖에서, 혹은 곤충 박물관에서나 봤을 때 귀엽지 집안에 들여놓으니까 한숨만 나는 것이다. 생물은 웬만한 결정 아니고서야 집에 들이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이후로 내가 고슴도치를 키우고 싶다는 얘기를 입 밖에 절대 안 꺼내게 되었다. 채집 집만 열면 젖은 흙냄새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는데, 또 그 아래에 굴을 파고 자고 있을 장수풍뎅이를 생각하자니 더 암담해졌다. 게다가 암수 전부 저 아래에 있어서 둘이서 짝짓기를 하고 있는지 잠을 자고 있는지 몰라 마음은 더더욱 싱숭생숭하기만 하다. 

 

모든 동물과 살아있는 생물들을 구매할 때는 그만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일전에 물고기는 키워봤는데, 내가 책임질 아들이 있어서 키운 것이 아니어서인지, 그때는 '죽으면 어떨 수 없다.'라는 생각으로, 그러나 성심성의껏. '취미'처럼 키웠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남다른 책임감에 빠져서 멀찍이 풍뎅이 통을 보고 있다. 귀엽지도 않고. 밤에만 나오는 저 장수풍뎅이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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