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다. 부모의 불안이란.
1년 전이었던가. 나는 그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에 복직했다. 와이프와 내가 맞벌이를 시작했을 때 집안에 CCTV를 방마다(4개) 두고 하원 할머니를 고용했다. 와이프와 나 둘 중에 한 명이 퇴근하기 전까지 하원 할머니는 약 4시간가량 아이를 돌봤다. 하원 할머니는 맘 카페에서 건너 소개받았고, 할머님이 아이를 잘 본다 하여 고용했는데, 우리 마음에 썩 차지 않았다. 와이프나 나나 한 시간 간격으로 CCTV를 앱을 통해 확인했고, 어떤 대화가 오고 가는지 소리도 틀어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감시당하는 기분이었겠으나 그래도 잘해주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만한 하원 할머니는 없을 것 같다. 우리 부부는 할머니를 계속 의심했고, 어린이집 선생님의 학대나 보육 할머님의 폭력에 대한 인터넷 기사가 메인으로 올라올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우리의 일이 아님에도 우리의 일인 것처럼 느껴졌고, 이는 할머니를 더욱 감시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그저 돌봐주시는(바라만 보시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에, 조금만 더 아이와 상호작용하며 신나게 놀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할머니를 바라봤다. 조금만 더 내 아이처럼 돌봐달란 말을 할 수 없었다. 내 가게에서 진짜 내 가게처럼 일할 알바를 뽑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아이를 내 아이처럼 돌봐주실 도우미를 구하는 것은 더 어렵다 하겠다.
끝도 없는 의심은 또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하원 할머니를 4달 정도 쓰고 결국은 남편인 내가 퇴사를 했다. 내가 좀 더 놀아주고 싶었다. 내가 좀 더 아이와 있고 싶다고 와이프에게 말했다. 1년 정도 지난 지금은 힘에 부친다. 좀 더 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고 계속 내 시간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어린이집 선생님을 더욱 믿으려고 자기 암시를 하는 것 같다. 아이는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린이집에 보내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만 간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나는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엄청 잘 돌봐주신다.'라고 말이다. 착각이면 어떠랴. 아이의 입에서 "선생님 좋아요." 나왔으면 다 되지 않았는가. 지금 어린이집 선생님은 내 마음에 쏙 든다.
부모의 마음은 아이와도 같다.
너무나도 민감하다. 아이의 한마디 말에 가슴이 덜컹덜컹 내려앉았다. 이전에 "선생님이 내 발가락을 꼬집었어."라는 말을 아이가 했을 때, 우리 부부는 자정이 지나도록 속앓이를 해야 했다. 지금이야 한 살 더 올라갔고 다른 선생님과 함께하지만, 그때 어린 반의 선생님은 와이프의 의심을 계속 샀으며, 긍정과 수근만이 가득했던 나조차도 어린이집을 바꿀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때 어린이집 CCTV 확인 요청을 했을 때 흔쾌히 동의하고 보여준 원장 선생님과 인자하게 바라보는 담당 선생님을 다시 생각하자니 감사할 따름이다. 아무런 의심할 여지가 없이 아이와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아들연구소 최민준 소장의 라포형성
라포(rapport)를 들어본 적 있는가. 라포르, 래뽀, 라뽀라고도 불리는 라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신뢰관계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나는 이 단어를 아들연구소 최민준 소장의 유튜브에서 처음으로 들었다. 1시간 만에 아이에게 신뢰감을 얻고 공감을 빠르게 형성하는 최민준 소장에게 라포 형성은 매우 중요하다.
최민준 소장은 어렸을 적 디아블로 2 게임을 하면서 엄마 속을 꽤나 썩였는데, 엄마가 어느 날 그게 그렇게 재미있냐며 나도 한 번 해보자 했단다. 리즈시절 최민준은 그때 "엄마가 뭘 알아?"라고 했을 법한데, "그래? 엄마 그럼 나 화장실 좀 다녀올 테니까 보석 좀 주워줘. 엄마 보석 좋아하지? 사파이어... 토파즈... 다이아몬드..." 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의 엄마는 소년 최민준과 라포 형성에 성공했고, 소년 최민준은 엄마와 디아블로를 함께하다가 어느 무렵에 그냥 게임 생각이 나지 않아 게임을 일찌감치 접었고, 또 엄마와의 유대관계도 더 좋아졌다고 했다.
이런 배경 아래 최민준 소장은 상담을 찾아온 아이에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 묻고, 게임이라고 아들들이 대답하면(아마 대부분 게임이라 할 것이다.), 무슨 게임을 좋아하냐고 물어본다. 놀랍게도 최민준 소장은 요즘 아이들이 자주 찾고 재미있어하는 게임의 진행방식을 모두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브롤스타즈를 좋아한다고 아이가 말하면 무슨 브롤을 쓰냐, 트로피가 몇이냐, 어떤 맵을 좋아하냐 하며 아이의 말길을 터주는 것이다. 기대도 안 했던 아이가 갑자기 눈이 말똥말똥 빛나면서 앞치마 입은 아저씨의 정체가 궁금한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라포
새로운 반으로, 그러니까 형님반으로 올라간 내 아이가 여전히 나는 불안했다. 아무리 좋은 시설에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그 불안감은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새로운 담당 선생님은 어린이집 스케줄에 맞춘 발달 달력을 모두 무시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휴원 발령에 스케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파격적인 알림장은 처음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 주었고, 하원 할 때 간단하게 만든 장난감을 얹어주어 어린이집에서 놀았던 놀이를 연장선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아빠인 나에게 주말에 뭘 했는지 알림장에 써놓도록 요구했으며, 어린이집에서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적극 어필해주었다. 아이에게 관심을 갖는 모습. 장점과 단점을 꾸미지 않고 이야기해주는 솔직함에 나는 감동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아이에게 항상 웃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직접 맡겨보고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느낀다. 많게는 다섯 명, 적게는 두 명을 혼다서 케어해야 하는 교사는 때마침 배변훈련에 들어가는 아이들의 똥 팬티도 애벌빨래하느라 버겁다. 내 아이 똥 치우는 것도 힘든데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러나 지금의 선생님은 현명하다. 먼저 부모와 믿음 관계를 두텁게 다지고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는 힘이 있었다. 때문에 아이를 바라보는 교사와 부모의 입장이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 생기고, 대화할 것은 점점 많아지게 된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그저 아이를 보육센터에 맡기는 것이 아닌, 즐겁게 놀다 오길 바라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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