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에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임신시켜놓고 사랑해서 결혼했다 라고 써본다. 그전에 사실 나는 진즉 프러포즈를 하고 같이 인생을 이어가자고 약속한 뒤이긴 했다. 여하튼 순탄하지 않은 고속도로에 진입한 셈이었다. 결혼 준비와 출산준비를 동시에 하느라 머릿속에 뭐하나 여유로운 생각이 없었다. 감성이란 단어가 내 머릿속에서 아얘 전무했던 때는 그때가 전부였던 것 같다.
못 말리는 책사랑
그녀는 책을 사랑한다. 나도 책을 사랑한다. 둘이 서점에서 일하다 만났으니 당연할 법하다. 그런 책탐은 보통을 넘었었다. 서로의 집을 놀러 가면 마치 히키코모리처럼 분야를 막론하고 도서를 구매하고 있었다. 웃긴 일화 중에 몇 가지를 써보자. 서로 눈을 가리고 중고서점에 팔 책을 마구 꺼내기도 했으며, 신혼집을 장만해서 서재를 합쳐보니 우리는 드디어 드래곤 볼에 나오는 7개의 구슬을 전부 다 모은 손오공처럼 민음사 문학전집을 전부 모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같은 책이 4권있었는데, 와이프의 서재에서 동종 2권, 내 서제에서 동종 2권, 총 4권의 같은 책이 있었던 것이다. 그 서적의 이름은 미니멀리즘을 안내하는 초기의 생활 실용도서로 [심플하게 산다]였다. 우리와는 아주 동떨어진 책을 서로가 두 권씩이나 갖고 있다니 이처럼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게다가 이삿짐센터 사장님은 우리가 이사할 때마다 "어휴. 교수님 목사님보다 책이 많아 아주 그냥" 하면서 툴툴 거리며 이사를 하신 적도 있었다.
게다가 음반
안타깝게도 나는 재즈 음악을 좋아한다. 아내도 그 점을 못마땅해 하는 부분이다. 인기도 없고,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은 재즈를 같이 듣고 있자면 와이프는 금방 이어폰을 뽑는다. 너무 어지럽고 때에 따라 힘겹단다. 그렇다. 분위기 좋은 재즈라면 또 듣겠지만, 하드 재즈는 또 어떠한가. 집중해서 들어도 간신히 좋을까 말까 한 정통 재즈를 듣다 보면 나만 오타쿠가 된 기분이다. 그러나 와이프는 별 말할 수 없는 게 음반 사재기도 한몫을 하시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구매했었다. 예를 들자면 동방신기라던지, 동방신기라던지, 동방신기 같은 것이다. 그들의 앨범은, 아. 왜 이리도 크고 거대한 것인가. 그냥 CD 케이스에 만들지 육각형에 A5에 하트 모양까지 가지각색으로 앨범을 뽑아냈다. 휴.
게다가 와인
또 안타깝게도 나와 와이프는 와인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서로 술자리를 갖기 시작하면 나보다 왠만치 센 와이프는 주량이 나보다 3배는 많았고, 내가 먼저 필름이 끊겨버리면 내 얼굴에 낙서를 어마 무지하게 했다. 때문에 판다가 된 채 서점에 출근한 적도 있었다. 하여 나는 술을 좀 줄여라고 잔소리를 했었고, 나는 얼른 필름이 끊기지 않기 위해 와인과 맥콜 음료수를 택했다. 와이프도 그래서 요즘은 많이 참는 눈치다. 맥콜은 도저히 못 마시겠다며 솔의눈과 기타 무알콜 맥주를 사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와인이란 게 참 평가하기 애매해서 때에 따라 텁텁하고, 달달하고, 종류도 제대로 못 구분하겠더라.
안타깝게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모두 다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책, 재즈, 와인, 모두 대중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좀 거칠다. 대중들에게 많이 인기를 얻지 못한다는 편이 맞겠다. 어디서 이런 기질이 왔는지는 몰라도, 나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재즈를 듣는 것이 좋다. 남성다움의 취미, 이를테면 오토바이, 자동차를 안 좋아한다. 축구는 아직도 하는 법도 모르고 볼 줄도 모르며, 야구는 왜 응원하는 게 재미있는지 모른다. 배구나 농구는 두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돈 벌기에 작정해서 주식투자, 부동산에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며, 회나 물고기를 좋아해서 낚시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다만 바둑과 장기는 너무 좋아해서 건널목 아래에 훈수 두는 할아버지를 죄다 이겨버리느라 다음에 꼭 오라는 망태 할아버지를 뒤로 도주하다시피 자취방에 온 적도 있다.
그 자식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나와의 단짝 친구인 C는, 정반대의 취미를 갖고 있었다. 흔히 그 시절 논다는 친구였으므로, 삥 뜯기 좋아하고, 오락실에서 노래 부르고 펀치 하기를 그렇게 좋아했다. 학년 낮은 동생들이 컵라면 끓여오는걸 그렇게 만족해했으며, 신발도 매번 바꿔 샀다. 선생님 말 잘 들어 매일 스포츠머리로 깎아오던 나와는 달리 C는 방학만 되면 노랗게 염색한 머리로 근처 여고 학생들과 놀러 다녔다. 나와 절친이었던 이유는, 그나마 내가 썼던 소설을,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오는 고등학교 배경의 판타지 소설을 손꼽아 기다려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 연락하며 지내는 C는 캠핑카를 몰고 자신의 아내와 여행을 다닌다. 생각만으로도 멋진 삶이다. 며칠 전에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나에게 보내주었다. 부러움이 넘쳐 좋겠다 이 새끼야 근데 얼마냐? 하며 물었던 적도 있다.
추억에 기대어 과거만 살아가는 것은 어느모로보나 옳지 않다. 하지만 자꾸 생각나는 이유는 그 자식이 보통의 사람이라서 그럴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생각 날 것 같다. 꾸준히 인기 있는 콘텐츠, 제목을 생각하다 보면 보통의 취미를 생각하게 된다. 아마 C가 블로그를 시작하면 나보다 방문자를 잘 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 취미를 바꿀 생각이 없다. 바꾼다고 해도 내 맘에 들지 않을 것이다. 블로그로 내 인생이 바뀔 순 없다. 보통의 사람을 따라간다는 의미가 얼마나 퇴색스럽고 허망한가. 특별한 것도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찾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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