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작가와의 만남(실제 만남이 아니고 소설책에 만남)은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라는 제목의 거창한 소설책이었습니다. 아니, 그전에 2018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으로 이 소설을 처음 만났군요. 그 뒤로 2019년에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소설로 또 박상영을 보게 되었습니다. 두 소설은 박상영의 스타일을 잘 알려주고 있고, 또 주제도 같습니다. 퀴어 문학입니다.
박상영의 소설을 이야기하자면 게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판에 김조광수가 있다면 이제는 박상영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박상영 소설의 모든 주제는 퀴어로 꽉 차있으며, 2018년부터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게다가 그 갈등 방식이 매우 조잡하고 디테일합니다. 모든 동성애 영화와 소설이 그렇듯 주인공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편견에 맞서 싸우면서 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흔들리기도 하고, 혼자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연인도 함께 흔들립니다. 여기서 더 별미인 것은 박상영이 지어낸 인물들은 어쩐지 전부 모자라 보입니다. 또는 찌질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 저를 오늘부터 우럭으로 부르세요. 쫄깃하니까." 같은 다소 섬뜩한 대사가, 게이를 다루는 퀴어 문학에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더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거나 따르는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이 책은 퀴어 문학이에요. 소설집에 모든 소설이 사랑이야기이죠. 게다가 게이 이야기인데, 아주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답니다,라고 한다면. 어떤 사람은 눈살을 찌푸릴 것 같습니다. 아직 퀴어 문학이 우리 시대에 보편화된 것도 아니오, 성평등에 대해 한참 화두일 뿐 그것이 공론화되지 않은 현실에서 이 책을 당연하게 추천하기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그럼 저를 오늘부터 우럭으로 부르세요. 쫄깃하니까." 같은 대사를 보고, 시시콜콜한 게이들의 어떻게든 살아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봤다고 해도 결국 '사랑이야기'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이게 게이 문학이라는 거지?" 하고 치부해버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여 재미있고 또 근래 유행인 책이며, 퀴어 문학의 대표가 되고 있지만 선뜻 추천하기엔 또 어려운 분야입니다.
그럼에도 손에서 놓지 않고 선물해줄 책에서 이 책을 들었다 놨다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서사가 지금만 베타성을 띌지언정 시대가 지나고 퀴어가 자연한 어느 한 미래에서는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힐 연애소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들고 포장지를 싼다면 엽서에 이렇게 적겠습니다. "아주 멋진 연애소설이에요. 이 소설을 사랑하신다면, 사랑하고 좋아하고 소중한 또 다른 사람에게 선물해주세요. 광어처럼 속이 다 보이게."라고.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무척 여러 번 표정을 바꾸었다. 피식거리다가 파안대소하다가 갑자기 진지해졌다가 콧날을 찡그렸다가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하나의 소설을 읽으면서 작중 인물이 토해내는 무력감에 속수무책으로 공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박상영의 소설은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이 작가가 한국소설의 경계를 한층 넓히고 한계를 지워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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