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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누가 요즘 책을 버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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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부분 대형서점으로 중고책을 판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알라딘, 예스 24, 교보문고에서 중고책을 판매할 수 있는데요. 그 대형서점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제가 그때의 이야기를 몇 번에 걸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 다섯 번째입니다.

 

1. 신중하게 파세요.

2. 남의 책을 팔지 마세요.

3. 판돈으로 꼭 다시 책을 사세요.

4. 책을 함부로 대해주세요.

5. 웬만하면 폐기하지 마세요.

6. 모든 것을 응대할 수 없습니다.

7. 재미있었던 서점 근무. 


 

중고서점에서 근무하다 보면 정말 별의별 책을 다 판매하러 오십니다. 사람을 벗겨놓고 묶고 때리는 SM물의 19금은 물론이고, 누드집, 누드 그리는 방법, 그 남자들의 사정 BL, 사주 명리학, 다단계, 신천지, 게임 공략, 닭 부위별 역사, 교통공사 역사, 세계의 모든 터널, 수중 용접 자격 관리사, 방탄소년단 포스터, 에반게리온 철학, 탁구 잡지, 지하 벙커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등등등... 그 많은 책들을 중고매장에서 받냐고요? 물론 받는 책도 있고, 받지 않는 책도 있습니다. 

 

 

하나도 풀지 않은 토익/기타 수험서를 꾸준히 판매하러 오신분이 있습니다. 그 분을 특별하게 더 환하게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구입했던 게 어디냐며, 다시 해볼 수 있을 거라며 잘 웃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넌더리 난건지... 제게 보이는게 쑥쓰러운지... 얼굴을 못드시더군요. 사실 수험서도 시기가 지나면 값이 낮습니다. 판매하려는 사람은 많고 사려는 사람은 적은게 수험서입니다. 게다가 트렌트 관련 도서보다도 수급 양이 많아서 값이 더더욱 저렴합니다. 이럴수록, 수험서를 판매하려고 찾아온 사람들은 아주 많이 실망하곤 합니다.

 

저는 토익을 본 적도 없고, 자격증이라곤 한문 검정 자격증 4급과 운전면허밖에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시기가 1년이라도 지난 기출문제 푼다고 뭐가 많이 달라지나요? 그냥 그 책 갖고 다시 공부하면 좀 어려울까요? 음... 아니면 그냥 버리지만 말고 라면 받침으로 쓰시면 안 될까요? 책을 버리자니 아까운 게 아닙니다. 언젠가 당신의 눈에 걸리면 좋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아얘 치워버리면 생각도 안 하게 되잖아요?

 

 

사실, BL같은 만화책을 서재에 꽂아두기엔 민망하겠습니다. 본인의 비밀 같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만약 1년 동안 고립되어야 한다면 당신이 가장 먼저 품에 안고 있을 책은 무엇일까요. 사소하고도 은밀하지만 가장 재미있는 그 책이 아닐까요? 

 

짧은 생각으로 내 품에 왔던 책을 다시 처분하려고 하지마세요. 손가락 사이로 바람처럼 흘러간 책이더라도 이사철에 다시 한번 만나게 되고, 다시 사랑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크리에이터 디렉터 박웅현은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에 대해, 생각하는 화두에 대해 알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내일 당장 손님이 찾아온다고 생각하고 서재를 뒤적여본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정리한 서재를 다음날에 또 보고, 그 다음날에 또 보면 언젠가 버리고 싶은 책도 다시 보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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