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
저자 장강명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8년 5월 4일
이 르포에서는 문학공모전과 공채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매우 비슷합니다. 일정한 기간에 사람을 모집하고, 제차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고, 뽑죠. 그리고 합격을 하게 되면 신분이 상승합니다. 그래서 경쟁률도 상당히 높습니다.
사실 2015년까지 삼성직무직성검사는 응시자 기준으로는 한국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시험이었다. 2015년 상반기 기준으로 한국에서 가장 응시 인원이 많은 시험은 대학수학능력시험(59만 명)이고, 두 번째는 국가직 9급 공무원 채용 시험(19만 명), 세 번째가 삼성직무적성검사(10만 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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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예전에 성우공채시험에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무려 4년 정도를 도전했는데, 마지막엔 최종까지 갔다가 탈락했습니다. 공채시험의 단점은 떨어진 자들에게 심각한 패배감을 안겨준다는 것입니다. 진입장벽이 없어 '나도 목소리 좋은데 성우나 해볼까.'하는 사람들이 남녀노소 수천 명 모이고 그중에서 단 10명도 안 되는 사람을 뽑습니다. 정작 몇 년동안 성우 공부를 한 사람은 빛을 볼 확률이 적습니다.
게다가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사람은 도대체 뭘 잘못해서 떨어진 건지 모릅니다. 1년 동안 죽어라 대본을 녹음하고 학원에서 피드백받고, 그래서 최종까지 갔는데 면접에서 떨어지니 해가 지나서 다시 공부합니다. 다시 또 대본을 구워삶아 봅니다. 그곳에 젊음을 다 쏟아붓고 지금은 다른 걸 하고 있습니다. 진작에 그거 안 하고 부동산 투자 공부했더라면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 겁니다.
소설가 장강명은 공대를 졸업하고 기자가 되고 싶어 도서관에 들어가 언론고시를 준비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낙제도 많이 했습니다. 장강명 저자도 본인이 최종면접에서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고, 다시 공부해서 그다음 해엔 합격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합격한 이유를 본인도 아직도 모른다고 합니다. 당연한 거죠.
성우공채시험에 뽑힌 성우들은 2년 동안 KBS라디오에 계약직으로 채용됩니다. 2년동안 '성우'라는 직업을 슈퍼루키 취급을 받으면서 방송국 안에서 어디에나 불려 다니며 유명세를 얻죠. 그렇게 더빙도 하고, 내레이션도 하면서 2년을 지냅니다. 하지만 그 후에는 프리랜서로 전환해서 경력을 이어나갑니다. 프리랜서라는 말이 좋지 그냥 백수인 겁니다. 그들의 현황을 따라가 보면 실로 기막힙니다. 대부분 성우학원, 보이스 스피치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렇게 경쟁률이 치열한 공채시험에 합격하고 나서도 성우가 아닌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사람도 많습니다.
다시 최종면접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마 최종면접에서는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은 대선배가 심사를 하겠죠. 그런데 심사위원들은 자신이 뽑은 사람이 유능한 인제라고 마땅히 자부할까요?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합격한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 싶네요. 공부하던 때와, 합격하고 다니면서, 실력이 좀 나아지셨나요? 더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 좀 드나요? 본인이 왜 합격했는지 알고 계신가요? 떨어진 사람들은 왜 떨어졌나요?
혹시 지금 성우 공부하시는 분 계신가요? 그 성우공채시험이라는거, 생각만큼 정교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다면 하시면 되지만, 웬만하면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개인적인 실패 때문에 억울해서 글이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책으로 다시 돌아가서 보더라도 맥락은 비슷합니다.
소설 공모전은 어떤가요? 예전에 소설공모전은 소설가 지망생들 사이에서 괴상한 루머가 있었습니다. 도입부는 반드시 현제형으로, 폰트는 신명조체, 글자크기 10포인트, 장평은 90퍼센트, 자간은 -9퍼센트로 해야 한다는 '법칙'이었죠. 이렇게 하면 글씨가 잘 읽힌다고 합니다. 글쎄요...
대기업 입사시험에서의 루머도 항상 있어왔습니다. 각 기업마다 선호하는 '얼굴형'이 있다고, 삼성그룹은 '착하면서 똑 부러진 인상의 얼굴', 현대차 그룹은 '반듯한 모범생 이미지'를, 남성은 파란색 넥타이, 여성은 둥근 코 구두를 신는 게 유리하다고... 심지어 입사에 성공한 사람의 정장이 '합격 정장'이라는 이름으로 중고거래 사이트에 버젓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이런 미신들은 응모하는 입장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만들어진 환경일 것입니다. 이해합니다. 저도 38기 공채시험 때에 '푸줏거리'를 한다고 해서 주변에 보이는 과자 껍데기 바코드 '38'을 잘라 다이어리에 붙이고, 우연히 발견한 음식점 간판 전화번호의 '38'을 사진으로 찍고 보관하기도 했고, 심지어 최종면접 전에는 일주일간 아침 6시에 방송국에 도착해서 그 앞 편의점에서 '기'를 받곤 했습니다. 시험을 떨어지고 나서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런 시험들. 우리의 잠재력을 다 알아주지 못하고, 정확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의 공채시험과 공모전은 아직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심각성도 모릅니다. 어쩔 수 없겠죠. 가장 공정한 방법이니까요. 그래서 다들 그 공채시험에 동의를 하고, 시험을 만들고, 또 응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험 사회가 만연하게 되면 대부분 패배자가 됩니다. 신분이 상승하지 못한다는, 아니,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또 1년을 준비하는 취준생은 늘어만 갑니다. 게다가 시험문제는 점점 괴상해지고, 사교육이 흥하게 됩니다. '합격자가 전수하는 비밀의 합격 방법' 이랄지, '출제시험 완벽 타파'같은 짜깁기 문제들만 정리해서 강의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게 됩니다. 사회는 점점 역동성을 잃어가고, 사람을 간판으로 평가합니다. 실력이 어떤지는 잘 묻지 않고 어떤 대학, 어느 직장에 다녔는지가 중요하게 됩니다.
하라는 대로 하고 간판으로 잣 대하는 사회. 저는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Q. 이 중 성격이 다른 것을 고르시오.
1. 아침 점심 저녁
2. 5월 6월 7월
3. ㄱ ㄴ ㄷ
4. 가을 겨울 봄
5.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이것은 2014년 4월에 실시됐던 삼성그룹 상반기 신입 사원 공채 필기시험인 삼성직무적성검사 문제 중 하나다. 시험이 있고 나서 며칠 뒤 YTN 뉴스에 [삼성 고시 "올해 많이 당황하셨죠"]라는 기사가 나왔는데, 거기에서 이 문제가 소개되었다. 방송 뉴스에서 삼성그룹 입사 필기시험을 '고시'라고 부르고 그 출제 경향 분석까지 한다.
-150p
저자는 공채시험제도를 완벽히 반대하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시험도 솔직히 매우 객관적이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저자의 책에서 간편하게 간추려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더 이상 무의미하게 공채만을 바라보고 피 말라가는 취준생이 없길 바라면서 리뷰를 접어봅니다.
첫째,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좌절하지 말자. 그들의 방식은 그렇게 정교하지 않으며, 수험자들의 잠재력을 모두 다 판단할 수 없다.
둘째, 합격한 사람은 너무 자랑하지 말자. 합격했다 하더라도 크게 인생은 달라지지 않는다.
셋째, 사람을 간판으로 취급하지 말고 능력으로 판단하자.
넷째, 자신의 스타일을 자주 바꾸고 멈추지 말자.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원하는가? 그러면 또라이, 반항아, 괴짜들이 설칠 땅을 마련해 줘야 한다. 한국 기업이 모두 공채를 없애고 또라이들을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많은 후보 중에서 신인을 선발하는 공채 시스템은 공정하고 치열하다. 과거에 성공적인 제도였고, 현재도 효율적이며 믿을만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공채와 별개로 또라이들이 사회 한구석에서 무모한 모험과 실험을 더 많이 벌여야 한다. 대담한 아이디어들은 실제로 구현해 보기 전에는 괜찮은 것과 황당한 것을 구분할 길이 없다. 모험가들이 황당한 아이디어를 성공시키면 그다음에 더 큰 회사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인수하거나 창안자를 영입해야 한다. 또는 모험가들이 직접 자기 회사를 키우거나. 그런 과정이 더 쉬워지고 더 ㅁ낳아져야 한다. 어떤 아이디어들은 그런 식으로만 건질 수 있다.
-1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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