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 커피라고 해서 큰 포트에 많이 줄 줄 알았더니 그냥 작은 도자기 포트에 담긴 커피였다. 끄더운 우유가 곁들여졌다. 커피가 몹시 진해서 바로 우유를 부었다.
그리고 나온 프렌치토스트. 얇지만 겉은 바삭하고 안은 부드러웠고 진한 계란과 우유와 밀가루와 설탕의 조화가 훌륭했다. 위에 올려진 라즈베리는 알이 굵었고 메이플시럽은 진했다. 나는 히틀러가 장기투숙했다는 이 호텔을 좋아하게 되었다. 너무 힘들고 너무 좋아서 얼이 빠진 채로 창밖만 본다. 눈 쌓인 빈의 거리는 분주하다. 빨간 트램이 지나갔다.
-오지은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27p
여행 에세이가 이런 건가. 이토록 훌륭하지 않은 음식에 대해서 훌륭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보니 여행 에세이는 읽은 책이 단 한 권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에세이는 잘 안 읽는 편이며, 여행 에세이는 더더욱 흥미가 없다.
여행에 관심이 없었다. 여행은 와이프랑 가는 것이고, 혼자서는 가봐야 별 감흥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김종광 작가의 소설집 [놀러 가자고요]는 놀러 가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웃긴 소설인데. 그 소설 속에 나도 있었다면, 돈도 없는데 그 돈으로 피자나 치킨 시켜먹지 왜 놀러 가느냐고 한마디 했을 것이다. 관광버스, 기차, 비행기 타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리저리 보러 다니는 건 좀 고역이다. 그나마 와이프를 만나고 여행의 느낌. 여행의 맛이란 걸 조금 알긴 했지만, 예전에는 여행은 무슨 근처 곱창집에서 곱창에 소주 한잔 대낮에 거하게 걸치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나 마시며 노을을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 나라에서 먹는 평범하고도 맛없는 음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렇다. 타국에 가면 그렇게 평범한 도로와 신호등, 하늘과 전봇대가 그렇게 멋있고 감격스러운데 음식이야 오죽하겠는가. 노명우의 책 [세상물정의 사회학] 속에 [맥도널드의 대한 명상] 부분은. 전세계에서 똑같은 레시피로 햄버거를 만드는 프랜차이즈에 대한 단상을 풀어낸다. 세계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맛. 그래서 실패가 없는 맛. 이제는 그런 세상이 되어버린 가운데. 그 나라에서 '실패가 없는 맛'은 또 다른 감격이 될 수 있다. 물론 오지은이 먹은 프렌치토스트는 그렇게 간결한 맛이 아닐 것이다.
여행 에세이의 묘미는 이런 것이었다. 세상 간편하고 별 것 없는 음식인데도, 낯선 분위기에 매료되면서, 먹으면 미각이 달라지는 느낌. 풍경에 반하고, 이국적인 언어들에 반하고, 매뉴판에 당황하며, 결국에 먹는 익숙한 맛. 똑같은 음식이건데, 차원이 다른 문장들을 내뿜고 있다.
오늘 밤엔 가장 저렴한 식빵과 가장 저렴한 라즈베리 잼을 사 와야겠다. 신혼에 장만한 고가의 토스트기에 버터를 올린 식빵을 넣고 구워서 다섯 조각을 연달아 먹고, 라즈베리 잼을 발라 세 조각을 더 먹은 다음 커피를 내려서 두 조각 더 먹을 예정이다. 오지은은 나쁜 사람이다. 철도여행도 못하는 나를. 이렇게 빵집에 가게 하고. 나쁜 사람. 오늘밤 나는 토스트와 여행을 떠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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