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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 소설 에세이

김애란 물속골리앗. 더위를 참기 힘든 어느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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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2018년에 쓰여진 글로, 개인 브런치에 적었던 리뷰입니다.

 

그 밑에는 놀랍게도 먹을 것이 있었다. 라면 한 개와 1.5리터짜리 사이다 페트병이었다. 라면 봉지를 손으로 만져봤다. 바스락 소리를 내는 게 아무리 만져봐도 진짜였다. (...) 허둥지둥 비닐을 뜯어 생면을 입안에 우겨넣었다. 너무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맛이었다. 이번에는 사이다 병뚜껑을 따 한 모금 마셔봤다. 꿀꺽꿀꺽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액체가 시원하고 알싸했다.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사이다를 들이켰다. 컴컴한 입안에서 작은 불꽃놀이가 일어나는 느낌과 함께 살짝 매캐한 눈물이 났다. 어둠 한 가운데서 알전구를 씹어먹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 몸속에서 환하게 타올랐다 이내 사그라졌다. 

-김애란 단편 소설 [물속 골리앗] 중에서. 

 

비가 오는 계절이 끝나간다. 요번 2018년의 여름은 장마가 없던 계절 같았다. 더위도, 추위도 웬만하면 잘 버티는 나는 요번 여름에 호흡곤란이 있었다. 

"왜 이렇게 숨쉬기가 힘들지? 여보. 에어컨 온도 좀 낮출게."

더위를 못 견디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아이와 함께 자는 방에서 에어컨을 아주 시원하게 틀어놓지 못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두바이보다 서울이 덥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미쳤다. 미쳤어. 되뇌며 이 하룻밤이 얼른 지나가길 손꼽아 기다렸다.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 잘 살았는데, 앞으로 계속 더워질 여름만 생각하면 현기증이 난다.

사진 출처는 알라딘.


김애란 [물속 골리앗]을 읽고 나서 비가 오면 사이다를 많이 마셨다. 2012년인가.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다. '사이다 병뚜껑을 따 한 모금' 마시는 행위를 자주 했다. 알전구를 씹어먹는 상상을 그렇게 많이 했다. 술과 낭만을 좋아한다면 치킨에 맥주, 파전과 막걸리, 오뎅탕과 소주를 비오는 날에 상상하곤 한다(애주가에겐 이것 말고도 엄청 많은 안주거리가 있겠지). 하지만 나는 요즘도 술보다 사이다가 많이 생각난다. 그놈에 알전구가 터지는 느낌 때문에 비오는 날, 습한 느낌만 나면 사이다를 갈구한다.

생라면의 느낌은 어떤가. '생면을 입안에 우겨넣고', '너무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맛'을 향해 별로 부시지 않고 입안 가득히 생면을 우겨넣었다. 대학 때나 그랬지만 요즘은 내자신이 궁핍해보여서 생라면은 사양한다. 하지만 그런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거칠고 퍽퍽한 생라면은 뭐니뭐니해도 신라면이다. 아주 굵지도, 아주 과자같지도 않은 면발은 입안에서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고전적인 느낌도 있다. 

근래에 와이프가 탄산수 한 박스를 경비실에서 들고왔다. 쿠팡에서 샀다며, 이제 탄산수를 먹으라고 권했다. 무슨 탄산수냐며 괜한 돈 쓰지말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러다간 당뇨병 걸리겠다고, 사이다 좀 그만 쳐마시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보름동안 탄산수를 한 박스 다 마셨다가 탄산수도 작작좀 먹으라고 당부당했다. 맥주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저지해주는 아내는 더 다행이다.

아파트 도로에서 초목 작업이 한창이다. 주황색 형광조끼를 입은 아저씨들이 크레인에 올라 작대기로 털썩털썩 나무를 치고 있었다. 그 밑에선 동료로 보이는 직원이 연륜에 맞지 않게 뿌셔뿌셔 스낵을 드시고 있다. 점심은 드시고 뿌셔먹고 계신 걸까. 왜 하고많은 먹을 것 중에 뿌셔뿌셔를 저렇게 아작아작 드시는 걸까. 금연이라도 하시는 걸까. 나는 그러면 오늘 뿌셔뿌셔를 사 먹어야겠다. 근데, 무슨 맛이 가장 맛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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