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참견 시점(MBC) 첫 화에서 이영자는 녹화 쉬는시간에 매니저에게 김치면 컵라면과 김밥 한 줄을 부탁했다. 컵라면을 사발면으로 사갈 지 큰 컵으로 사갈 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매니저는 큰 컵을 골랐고. 이영자는 탄식한다. "그게 아니지!". 뒤이어 송은이가 말한다. "김치면은 사발면이죠. 스낵스낵한 느낌이 있으니까.".
'스낵스낵!'
우리에겐 인스턴트 욕망이 있다. 퇴근하는 지하철 길에서, 뜬금없이 작은 스트로폼 용기의 김치면을 먹고 싶다거나. 베이컨 샌드위치를 위해 양상추, 베이컨도 사놓았으나 지금은 다 필요 없고 식빵에 케챱만 뿌려 먹고 싶다거나. 빅맥도, 버터킹도, 롯데리아도 필요없고 그냥 편의점 햄버거가 필요한. 그런 저렴한 입맛을 다실 때가 있다.
오늘도 그랬다. 다 필요 없고, 천 오백 원하는 편의점 소시지를 뜯어 옆구리가 터질 때까지 전자렌지에 데워 호호 불어먹고 싶은 때다. 그런 싸구려 음식을 먹을 때, 첫 입의 내 혀는 비로소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움직이며 구체적인 된다.
맛집 가서 처먹고, 외국에서 처먹고, 남녀모여 처먹고, 남의 집 가서 처먹고, 처먹고, 처먹는 방송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현장에 가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우리 식탁이나 냉장고에 있는 그 음식들은 항상 방송들에 비해 턱없이 부실하다. 부실하다 못해 한숨이 나오고 벌써 먹지도 않은 떨감을 한입 베어 문 것 같다.
그러나 그 텁텁한 느낌을 지우길 바란다. 그 또한 음식이고, 내 배를 불려줄 따끈한 음식이 된다. 부디 실망하지 말자. 파리에 맛있는 파스타도 필요 없다. 경복궁역 앞에 줄지은 삼계탕집도 필요 없다. 내겐 식탁 위에 식빵 한 조각. 다이어트에 실패해 켜켜이 쌓여있는 냉동고의 닭가슴살 한 조각들이 나를 위로해 줄 것이다.
어디 냉장고뿐인가. 지금은 200m 편의점 시대다. 어디를 걸어가도 100 발자국 미만에 편의점이 있다. 과장하지 않고 100 발자국이다.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생각하자. 편의점에 가서 그 무엇도 돌아보지 않고 신라면을 사겠다고, 수박바를 사겠다고, 참치마요가 없으면... 그건 모르겠다고.
당신의 마음에 스낵스낵을 참지 말자. 우리 몸에는 별 거 안 들어간다. 충분히 기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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