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9년 9월에 개인 브런치에 올렸던 이야기 입니다.
육아휴직 후 3개월 근무. 그리고 퇴사.
서점에서 근무한 지 4년. 그중 육아휴직은 1년. 그간 결혼을 하고 아이는 세 살이 되었다. 내가 퇴사하는 이유는 서점이 마음에 안 들어서도 아니요, 아이와 세 살까지는 함께할 부모가 있어야 한다는 육아서의 지침 때문도 아니다. 그저 남들에게 내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누구도 부모만치 돌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은 시부모, 친정에 아이를 맡기거나, 와서 좀 돌봐달라 할 작정이었으나, 말을 꺼내기도 전에 '너의 아이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칼 같은 대답이 돌아왔고, 어린이집에 늦게까지 앉히려니 아이에게 너무 마음이 쓰였다. 하원 하는 아이의 상태는 꾀죄죄했는데, 웬만한 아이들 전부 하원 하면 혼자 부모도 없이 외롭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했다.
하원 도우미를 구했고, 방마다 카메라를 달고 사전에 협조를 구했으나,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건 역시 부모만도 못해서 내가 성이 차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맞고 뺏기면서 따르는 내 아이.
언젠가 와이프가 어린이집에 같이 다니는 부모들과 함께 우리 집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아이 셋 정신없이 우리 아이의 장난감을 갖고 노는데, 이것도 갖고 놀고 싶고, 저건 같이 갖고 놀고 싶은데 생각 같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맞고도 같이 놀자는 내 아들의 상황을 정리해서 와이프가 말해주니 억장이 무너졌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둘 중 하나는 그만둬야겠다.
너는 그러면 애가 툭하면 쫒아갈래?
생각 안 해본 것도 아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 중학생이 되어서 학부모를 소환할 때, 누군가에게 맞고 올 때, 일일이 지구 끝까지 가서 보복하거나 문책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에겐 골든타임이 있다고 들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배변을 두려워하고 쑥스러워했던 것, 대학생 때까지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고자 열심히 튀고 싶었던 것은 어쩐지 아이적에 '골든타임'을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가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가기 위해선 어찌 됐건 시간이 아이들을 완성해주겠지만 나처럼 방치되어 살아온 인생처럼 살게 할 순 없다. 할머니, 고모, 이모, 도우미에 거친 불안전한 유아기를 거치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하여 어떤 삶의 방식이나 인간과의 소통이 거칠어 시간이 지나야 만 비로소 괜찮아지는 사람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삶의 상식을 일깨워 주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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