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동네 정육점에서 돈피(돼지껍질)를 샀습니다. 한 근에 1000원이라기에, 뭐 이리도 저렴한가 싶었고, 돼지껍질을 먹고 싶기도 했습니다. 돼지껍데기는 고기집에 있으면 환영하고 먹는 메뉴였는데, 그 때문에 더 생각난 것 같습니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껍데기는 양념이 되어있거나 되어있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인데, 저는 양념되지 않은 돼지껍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조건 없 구워 먹으면 돼겠지 생각했던 건... 큰 오류였습니다.
비교적 얌전한 돼껍.
누린네를 제거하기 위해선 엄청난 공을 들여야 했습니다. 무, 대파, 마늘, 월계수 잎, 다시다, 멸치, 소주... 비린맛을 제거하기 위한 모든 재료를 넣고 팔팔 끓여야 했는데, 보통은 40분. 많게는 1시간 동안 끓여야 했습니다. 그 비린내가 뭐라고 이렇게 호들갑이야 생각하며 한 장을 그냥 구워 먹었는데 헛구역질이 바로 나왔습니다.
쭈욱쭈욱 마법처럼 늘어나는 돼지껍데기.
다시 장을 보러 갔습니다. 이것저것 사니까 2만 원이 넘는 돈이 털렸습니다. 이럴 거면 왜 산거냐 혼자 자책하면서, 맛있게 한 번 먹어보겠다고 오기가 생긴 겁니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이상민이 돼지껍데기를 말려 튀기면서 길게 늘리고 바삭바삭 스낵처럼 먹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대체 얼마나 삶고, 또 말려서, 그렇게 맛있는 스낵을 만들 수 있는 거야.
돼지 껍데기를 굽는데 누린 네가 빠지지 않아 결국 빨간 양념을 칠하기로 했습니다. 다시 장을 보러 갔습니다. 청양고추, 양배추, 양파, 고춧가루 등등을 사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저는 1만 원이 더 털렸습니다. 돼지껍데기 다시는 안 산다.
그렇게 먹은 돼지껍데기는 환상적이었습니다. 느끼하고 말랑한 식감에 뒷 맛이 아주 깔끔하면서도 매케했고, 먹으면 먹을수록 족발을 먹는 느낌이었습니다. '콜라겐을 온몸 만끽했어요!' 하는 몸속의 환호성이 있었습니다.
다 처먹고 나니까 수많은 야채들이 냉장고에 가득이었습니다. 일부만 쓰고 남은 야채들을 보며, '언제 저걸 다 쓸까, 다 상하겠지.' 생각하니까 기어코 저것들을 활용한 음식들을 일부러 생각하고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엔 라면에 이 온갖 재료들을 넣고 팔팔 끓여 먹었습니다. 기어코 황제의 음식이 탄생 했습니다. 부대찌개 같은 진한 맛을 내뿜는 신라면이 탄생했었더랬습니다.
난생처음으로 '혼자'라는 걸 느껴본 대학 자취생 시절. 요리하며 살겠다는 작은 목표로 이것저것 식재료를 사서, 작은 냉장고에 구겨 넣은 기억이 납니다. 보름이 지나면 양파와 대파가 시들고, 김치는 쉰내가 가득해서 냉장고 열기 두려워지면, 요리는 뒷전이고 배달음식을 시켜먹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평범한 자취생으로 변했습니다.
어휴. 아들아. 밥 좀 먹고 살아라.
지금 와서 생각해봅니다. 그때 기어코 요리를 했더라면, 끊임없이 남는 식재료를 감당하며 무엇이던 지지고 볶고 살았더라면 지금은 정말 요리를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혹은, 잘 하지 못하더라도. 감자나 꽃게나 삼겹살이나 연어 같은 음식들의 그램수를 보며 내가 어느 정도 먹을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이야 막 깨달아서 "아 삼겹살 500g은 우리 가족이 먹기 적당한 양이구나." 생각합니다만, 그전까지는 머릿속에 혼란만 가득하고,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하는지 몰라 용기 내어 물어보면 '그~ 먹는 사람에 양에 따라 다 다르지 않겠어요?'라는 말에 더 혼란이 왔었습니다.
그리하여 요리를 합시다. 대학생이면서, 이르게는 고등학생이면서 자취를 하는 청년들이여.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살기가 얼마나 퍽퍽하든, 편의점 음식으로 해결하는 날이 많겠지만. 지지고 볶는 것만이 이 세상의 재미입니다. 너무 힘든 아침에 수돗물에 된장만 풀어넣어 끓인 된장국을 먹어보고. 배고파 죽을 것 같은 야밤에 냉장고에 있는 모든 재료를 프라이팬에 넣고 구워 먹는 겁니다.
그렇게 요리인생으로 내 인생의 썰은 많아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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