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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굿즈와 서점 이슈

밀리의 서재 정기구독 했다. 이 가격이면 과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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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밀리의 서재. 변요한. 이병헌.

아련한 2년전의 밀리와 만남

밀리의 서재를 구독한 것은 2018년이었다. 당시 아내를 데리고 돌 막 지난 아들을 아기띠에 얹혀메며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 갔을 때였다. 아니는 내 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내 차가 없는게 그렇게 서러울 줄은 몰랐다. 아이를 위한 짐은 물티슈와 기저귀부터 쪽쪽이에 물병에 예비 보리차까지 짊어지고 가야했는데, 도서전 뿐만아니라 모든 코엑스에서 열리는 박람회 비슷한 행사장에 가면 과소비를 할 수 밖에 없는 법. 우리 부부는 거기서 거의 50만원 가량의 책을 사고 집으로 돌아와 탕진했다. 그때 밀리의 서재를 구독했다. 

 

우리가 이렇게 책을 많이 사느니 차라리 전자책으로 보자는 의미도 아니었고, 책이 집안에 많으니 이제는 전자책으로 생활을 다하자는 의미도 아니었다. 그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밀리의 서재를 봤고. 무심결에 그쪽에 팜플렛을 집어들었던 것이다. 당시 이병헌과 변요한이 밀리의 서재를 홍보하고 있었다. 이미지가 주는 힘이 실로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엄청나게 책을 안보는데, 그런 훈남들까지 나와서 홍보를 하니까 그렇게 읽지도 않는 책에 대해 새삼 궁금해지는 사람들이 많겠다 싶었다. 나는 남잔데, 내가 다 설레이더라. 변요한 사랑해요.

 

아무튼 가격과는 상관없었다. 그저 밀리의 서재에 나오는 오디오북의 품질이 어떤지 듣고 싶었다. 모든 책을 전문성우가 녹음하진 않았다. TTS(Text to speech), 즉 자동읽기로 처리된 책들은 많았지만 메인에 나오는 책들중에 군데군데 유명인이 직점 낭독하거나 사전요약을 녹음한 경우도 있었다. 흥미로웠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자니 집중도 잘됐다,라는 말은 뻥이고 잠만 잘왔다. 자동읽기이건 배우나 연예인이 읽는건 매우 큰 차이이지만 청자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집중되지 않는다. 물론 책에 따라 다르다. 아무리 이병헌이나 변요한인들 그들이 총균쇠나 사피엔스를 요약해준다고 다 재미있진 않은 것이었다. 

 

밀리의 서재. 김영하.

반가워요 김영하. 고마워요 컨텐츠.

그런데 2020년에 와서야 내가 다시 구독을 시작한 것은, 밀리의 서재 컨텐츠가 굉장히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의 이병헌과 변요한이 없지만 이미 떠오를대로 떠오른 김영하 작가가 메인을 버티고 있다. 이전에 기네스 CF에서 봤고, 그전에 사인회에서 봤으며, 그 이전에 군대에서 그의 소설을 줄기차게 읽었기에, 김영하를 밀리의 서재에서 봤을땐 진짜 코피를 쏟는 줄 알았다. 너무 반가웠기 때문에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신작을 밀리의서재에서만 단독공개 한다고 해서 마치 굶주린 동물처럼 결제버튼을 찾았던 나였다. 그런데.

 

정기구독을 했는데도 김영하의 신작은 볼 수 없었다. 정기구독은 9,900원으로 어플로만 전자책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김영하의 신작을 보기 위해선 '종이책' 월 정기구독을 신청해야했고, 이 가격은 15,900원 이었다. 종이책 정기구독 서비스는 밀리의 서재에서 한정판 종이책, 그러니까 단행본은 배달해주었고, 종이책 정기구독자에게만 보여주는 특별한 컨텐츠도 조금씩 늘어난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9,900원짜리 월 정기구독만 한 했다. 가격도 얼마 차이 안나는데, 이런.

 

그러나 낙담하지 않고 있다. 위에서 말했지만 가면갈수록 컨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이전에 봤던 김영하나 장강명의 소설도 기분전환삼아 볼 수 있었고, 예상외로 최신 잡지들도 탑클래스, 멘즈헬스, 오토카, 월간 그림책, 씨네21, 게다가 격월간 문학잡지 Axt까지 최신순으로 올라온다.(여기서 이 글을 읽는 남성들은 사뭇 기분이 들뜰텐데, MAXIM도 최신호로 올라온다.) 정말 컨텐츠가 무궁무진해 진 것이다. 최근에는 뮤지션 장기하가 혁오 아티스트에게 추천 받은 책이라며 <평균의 종말>을 간략하게 핵심만 담아 오디오북으로 녹음했는데, 재생시간 20분 안밖으로 매우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이정도가 9,900원이라니. 이정도면 충분하다. 아니다. 이정도면 나에게 과분할 정도다. 

 

전자책 말고 종이책이라고? 전자책부터.

그러나 이런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격이 싼 이유는 넷플릭스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단지 유행이라서가 아닐 것이다. 너무 너무 많이 이야기했고, 절박한 심정으로 써내려가지만, 사람들은 책을 안 읽는다. 그 때문에 이렇게 싸고 좋은데로 많이들 모르는 것이겠고, '나는 종이책이 좋더라, 전자책은 무슨.' 하면서 종이책을 읽을 생각을 안하는 것이렸다. 심지어 요즘에 0원 무자본 창업으로 유명한 유튜버이자 사업가 자수성가 청년 <자청>도 이런 말을 한다. "사실 성공은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안 읽기 때문에, 책만 읽어도 성공합니다."

 

지금은 주춤하지만 한때 유명했던 강신주 철학자는 어떤 강연 프로그램에서 책을 읽으라는 독려 차원에서 그런 말을 했다. "순정 만화라도 읽으세요. 드래곤 볼이라도 읽으세요.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읽고 또 읽으세요. 왜요. 누가 쳐다볼까봐 부끄러우세요? 나이 먹을만큼 먹은 사람이 왠 만화책이고 판타지 소설이냐고요? 지금 책을 안잡고 있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여 지금부터라도 밀리의서재를 구독해보자. 뉴스는 텔레비전으로 보도록 하자. 더이상 네이버 뉴스에 댓글에 휘말려 자신의 주체성을 잃어버리지 말고 단단하고 천천히 전자책으로 그 시작을 다시 다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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