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치킨은 야식을 대표한다. 예전에 아빠한테 치킨 사달라고 조르고, 성공하면 그날은 정말 특별했다. 하지만 이제 특별하지 않다. 평범해졌다. 치킨 말고 야식은 많지만, 치킨 이상의 야식은 이제 없는 것 같다. 쌀 다음은 치킨인 느낌. 그러니까 주식이 된 느낌. 당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제 치킨은 국민의 야식이 된 것이다.
치맥 페스티발이 열리고, 치믈리에 대회가 열리고, 치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치킨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러니 이 시기에 치킨을 이야기하는건 엄청 쑥쓰럽다. 그럼에도 치킨이 죽는 날까지 닭다리 한 점 부끄럼 없는 느낌으로 써보겠다. 여러가지 맛의 치킨이 있고, 상황에 따른 치킨의 맛은 각각 다르겠지만,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치킨은 '어제의 치킨'(이하 : 어치)이다. 혼자 한마리를 시켜먹고, 남은 닭은 냉장고에 넣어놨을때, 다음날 아침엔 별로 배고프지 않아 콜라만 마시다가 정오가 될 무렵 식은 치킨을 꺼내 먹는 그 맛. 눅눅하게 젖은 튀김에 차갑게 굳어버린 속살이. 가장 맛있는 것 같다.
특히 '어치' 종류중 가장 기똥찬 건 순살 파닭이다. 기세좋게 살아있던 파채들이 다음날, 겨자소스에 숨죽어 있을 때. 김 싸먹듯 순살에 파를 감싸 먹으면 입안에서 침샘 별사탕이 마구 터져오르고, 코 끝을 파오리가 세차게 때리는 기분이 든다.
가장 사연있는 '어치'도 있다. 언젠가 모 브랜드에 '불닭 치킨'을 먹었는데, 순살도 아니고 2천원 아껴보겠다고 뼈 있는 불닭치킨을 시켰다. 같이 먹는 사람은 세 조각 먹고 "먹는 거 갖고 장난치면 안돼." 라고 한 소리했다, 마치 내가 요리를 잘못한 사람처럼 죄책감이 들었고, 다음날 '어치'가 된 불닭치킨은 살을 발라 밥을 떼려넣고 볶아 먹었다. 이 감상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요리왕비룡이다.
사실 무난한 건 후라이드 치킨 아니겠는가. 보통의 치킨. 후라이드가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것도 감동이다. 부위별로 식감이 천차만별인데. 만약 가슴살 부분을 남길 계획이라면 깨소금을, 닭다리를 남길 계획이라면 양념장을 준비하는게 좋다. 이도 저도 아니면 치킨무가 좋겠다. 물론 그냥 먹어도 정말 눅눅하고 감성적이다. 입안에 빈티지가 뿜뿜!
누군가 '어치'를 냉장고에서 꺼내 전자렌지에 넣으려 하는 상황. 언젠가 이런 상황이 생기면 재치있게 말하고 싶다.
"누가 냉장고에 있는 치킨을 전자렌지에 돌려먹는가. 누가!"
"그것은 어제의 치킨에게 다시 튀김옷을 입으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도다."
"전자렌지도! 에어프라이어니 뭐니 그런 것도! 치킨을 모르는 자가 쓰는 것이니!"
"어제의 치킨이 다시 따뜻해지길 원하다니, 차라리 배고파지길 기다리겠노라."
이상한 컨셉을 가진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 생각한 만화책은 [심야식당]이다.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 받고, 드라마로 방영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각색되었으나 보기좋게 망한, 그만큼 매니아층이 넓은 [심야식당] 초반부에서는 '어제의 카레'가 나온다. 어떤 장면에서는 '어제 만난 여자가 오늘도 맛있다.'는 뺨 후려치고 싶은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거말고 내가 감명깊게 봤던 부분은. 어떤 음식이라도 남이 먹는 음식을 더 먹음직스럽고, 사연이 있는 음식이 항상 맛있는 법이라고.
그렇다고 내게 치킨에 사연이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닌데. 굳이 말할 것 같으면 어떤 추례한 맛이랄까. 지금 나는 가난하고 배고픈데 이거라도 먹어야겠다는 그로기 상태에서 먹는 느낌이 정말 좋달까.(사실 뭔가를 차갑게 먹을 정도로 가난하거나 덜 익혀먹는 인내심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어쨌든 제가 '어치'를 먹는 모습을 보시게 된다면, 여러분도 먹고 싶어질 거라고요.
그렇다고 치킨 시켜놓고 내일먹겠다고 한 조각도 안먹고 냉장고에 넣고 그러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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