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 골형성부전증으로 인한 짧은 키, 보조 보행기, 짧은 발음. 장애를 딛고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었던 미셰 페트루치아니.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장애 따윈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불안하고도 낙후할 것 같은 그의 생애는 생각 이상으로 찬란했으며, 그의 연주는 항상 에너지가 넘칩니다. 특히 그의 대표곡 <September Second>의 강렬한 도입부는 가슴을 뛰게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한 아티스트를 평가할 때 성별, 국적, 종교, 학벌 같은 것들로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신체적인 조건도 마찬가지 일 것 같습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의미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이 성공했을 때 '이겨내었다.'라는 수식어를 들이밀곤 하는데요. 하지만 페트루치아니에게 쏟아졌던 수많은 찬사들을 보고 있자면 이 사람이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저는 페트루치아니가 만들었던 음악을 들어만 봐왔지 그의 대해선 잘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특히 재즈가 그렇지 않을까요. 음악만을 먼저 접하고 아티스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재즈의 가장 특별한 장점 같습니다.
하지만 그가 연주하는 동영상을 한 번쯤이라도 봤더라면 매우 힘겨워 보여서 '역시 좀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피아노 의자에 앉으면 건반은 거의 목 높이에 있고, 페트루치아니는 왠지 건반 끝과 끝을 힘겹게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마저도 매우 힘겨워보이는데 놀랍게도 엄청 빠르게 움직이며 음정 또한 정확합니다. 그렇게 많은 움직임으로 연주하니 피아노 속으로 작은 몸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어느 밤에 이 연주를 보고 있자면 '아... 인간이란 어쩜 이렇게 평등하고도 강렬할까...' 하는 이상야릇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른살 즈음에 생이 끝나버린 짧은 기간. 그 기간 동안에 미셸 페트루치아니는 온몸으로 재즈를 연주하는 '가장 작은 거인'이었습니다. 아니, 이런 수식어도 사실 편견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애 따윈 개나 줘버릴 태세일만큼 항상 그는 긍정적이며, 때론 거만하다고 보일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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