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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문 고전

아날로그 키퍼 문경연 <나의 문구 여행기>. 연필 그 이상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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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를 어디까지 좋아할 수 있을까요. 저자 문경연은 그 스스로의 질문 때문에 돌연 여행을 떠납니다. 저자는 아주 훌륭한 문구 덕후인데, 여기서 '훌륭한' 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는 문구에 대한 호기심이 항상 왕성하며, 또 색다른 것을 구매 했다고 해서 예전에 구매했던 문구를 결코 등안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문구 여행기

 

만년필을 사 보신 적이 있나요. 혹은 5천원 이상의 고가 샤프나 볼펜을 사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렇게 사둔 문구들이 지금 제 옆에 있지만, 안 쓴지 꽤 오래 됐습니다. 저자의 책 <나의 문구 여행기>를 보고 있자면, 제 문구들에게 참 슬퍼집니다. 그러면서 참 알뜰살뜰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아무래도 여행기 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챙겨가며 이동하는 순간들을 읽을 수 있는데, 문구를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자면 인상이 보이는 것 같고, 성격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문구로서 사람의 인상도 보이는가봅니다. 

 

고무줄이나 클립, 집게 같은 아주 사소한 용품들도 잘 사용할 줄 알며, 지나치면 별 것 아닐 마스킹 테이프로도 예쁘게 다이어리를 꾸밀  수 있습니다. 신선한건, 그렇게 다이어리를 꾸미기 좋아하고 기억을 남기고자 열렬히 메모하는 저자의 필체는 생각보다 투박합니다. 마치 고등학생의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같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기 보단 다이어리 꾸미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방대한 양의 입장권, 커피홀더, 영수증의 꼬부랑 글씨들을 보고 있으면, 고등학생 수준이 아니라. 이사람 괴짜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저자는 베를린과 바르셀로나, 또는 중국을 다니면서 문구에 대한 재미있는 시각들을 기록합니다. 문구에 대한 열정과 여행은 생각보다 각별해서, 건물 외관이나 사람들의 인상에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문방구만 찾아다니는 것도 같습니다. 여행은 이색적이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또 근사한 휴양지에서 편히 쉬는게 여행이 아닌가 생각도 드는데, 그런 멋진 힐링이 저자에게는 '문구'라는 단 하나의 카테고리 였나 봅니다.

 

베를린은 흡사 레고로 만든 동네 같다. 각지고 네모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지금까지 여행한 유럽의 도시 중 가장 단순한 모양새다. 호스첸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걷는데 거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것들이 시각적으로도, 사용하기에도 좋았다. 독일 사람들은 어린시절에 기초 디자인 수업을 의무적으로 받는 걸까? 슈퍼의 작은 표지판 하나도 이렇게 세련되다니.
-베를린, 기록광을 위한 도시 중에서.

 

쌀쌀한 초봄 날씨에 초등학생 저자는, 아버지와 '모닝글로리' 문방구에 가서 파란색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36색 크레파스와 6공 바인더 다이어리를 선물 받습니다. 그 뒤로 크레파스에 촉감을 줄 곧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문구에 대한 애정이 시작되었고, 그 애정이 어머니와의 교환일기로 싹을 티워 더 많은 문구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기를 쓰는 즐거움과 답장을 받는 기대감. 문구는 그렇게 사소한 연필이나 쪽지 한 장 임에도 사람을 충분히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문구 여행기는 겉으로만 보면 비록 세계의 문방구를 찾아서 기록을 남기는 것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문구 덕질 했다고 책까지 낼 필요가 있나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저자가 문구를 좋아하고, 또 어머니와 교환일기를 쓴 것 처럼. 문구 이외에 저자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거 한 번 해볼려고 여행간다.'고 하면 안 말릴 사람 누가 있겠어요. 모아놓은 돈으로 세계일주 간다 그러면 등 토닥이고 잘 다녀오라고 기꺼이 말해주겠지만. 세상에. 볼펜 보러 중국 간다고 하면 아무도 달게 보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여행을 떠난 뒤 저자는 내내 초조합니다. 내가 잘 다녀올 수 있을까.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외에 뜬금없이 나가서는 그래도 헛되이 보내고 오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걸 합니다. 여행 일수만큼 빼곡히 편지를 쓰고, 이것이 자신에 대한 투자라면서 공을 들여 씁니다. 그래도 불안하면 스도쿠를 합니다. 기차 안에서 휴대폰 앱으로 하려다가 화면이 너무 흔들려 스프링 노트에 적어놓고 시작한 스도쿠 게임은. 그 시작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숫자를 맞추는 쾌감에 사로잡혀 이 세상 고민을 그것으로 날려버렸다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저자가 이미 답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아날로그 키퍼'라는 문구 브랜드도 운영하고 있고. 문구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으며. 책도 발간했으니까요. 특히나 문구는 좋아하는 그 무엇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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