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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미술관 알바 후기. 그리고 아들과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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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약 5년전에요(...). 엄청 오래되었으며, 지금 미술관은 또 어떻게 운영하는지 알 길은 없으니, 진짜 미술관 알바 후기를 찾고 오셨다면, 조금 실망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1. 아들과 함께 가는 미술관.

ECM Records 창립 50주년 기념전시회.

저는 4살짜리 아들과 매주 일요일에 근처 미술관에 갑니다. 아이가 어릴 적부터 문화활동을 하는 것은 정서에도 좋고, 나중에 성적에도 영향이 있으며 대인관계 및 창작활동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뉴스가 있었기 때문은 절대 아닙니다. 그냥 제가 좋아서 가고, 시간 때우기 좋아서 가며, 원래부터 미술관 가는 걸 그리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공짜 입장이나 할인 티켓이 있으면 눈에 불을 밝히고 자주 갑니다. 도슨트나 오디오 전시설명 따위 없어도 됩니다. 가서 그림만 쓱 훑어보아도, 전시 작품만 휘잉 둘러보아도 힐링이 된 것 마냥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그래서 전시회를 가는 것은 결혼 전이나 후에나 정말 좋아합니다. 

 

얼마 전부터 아이랑 미술관 투어를 하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저는 차도 없어서 거리가 먼 미술관은 택시를 타고 가는데요. 예전엔 아기 띠에 둘러메고 가면 아이가 그나마 제 곁에 있기 때문에 힘들어도 천천히 걷다 보면 업혀서 잠이 들거나 혹은 같이 곧잘 봤었습니다만, 지금은 팔딱팔딱 뛰어다니고 온 전시회장에 만지고 때려서 어린이 전시회 밖에 못 갑니다. 너무 서글픕니다. 전시장 관계자가 와서 "만지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할 때마다 제 심장이 출렁출렁 거리는데, 작품 감상은커녕. 그냥 빨리 나가서 사탕이나 쥐여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나는 코코 카피탄,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대림미술관.

2. 매우 좋았던 미술관 추억.

저는 청년 시절에 미술관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8시간 근무에 6시간 서 있으면서 고객에게 "줄 뒤로 물러나서 감상해주세요." 하며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는데. 그때 정말 많은 힐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발이 너무 아파 못 견딜 때도 많았고, 주말이면 방문객이 많아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앵무새가 돼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경험이 그래도 값졌던 것은, 미술관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매너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3.미술관은 매너다.

우리나라에서 미술관에 방문하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데이트를 즐기러, 혹은 관심 있는 아티스트의 전시를 찾으러 오는 사람이 주 소비자인데요. 데이트를 즐기러 오는 분들 거의 20~30대로, 옷차림이 굉장히 깔끔하고, 행동이 남녀 모두 조신합니다. 해서 컴플레인도 별로 없고, 다가와서 전시 설명을 바라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티스트가 궁금해서 오신 분들은 연령대가 다양합니다. 만약 제가 고흐의 그림을 지키고 있다면, 하루 6시간 서 있는 중에 한 번쯤은 저에게 다가와 "이건 무슨 작품이죠?"라고 설명을 구하시는 분이 꼭 있습니다. 제가 전시설명을 하는 도슨트도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그 또한 전시를 관람하고 싶은 입장에서 '많은 감명을 얻고 싶다.'라는 마음이 있기에 질문을 감사히 여기고 비록 부족하지만 성의껏 설명한 적도 많습니다. 

두 부류 모두 감사하고 또 기본적인 매너가 있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대게 그런 분들입니다. 특별한 날에 만나는 사람들처럼 모두 옷을 점잖게 입고, 고운 말을 쓰며 전시를 관람하죠.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참 행복했습니다.

 

4. 그래도 미술관은 돈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서 있기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저를 관리하는 매니저는 하루에 한 시간씩 저를 안내 데스크 옆 회원가입 부스를 맡겼는데요. 첫 회원가입 시 전시 티켓을 파격적인 할인가로 끊을 수 있다는 홍보 멘트도 있었습니다. 매일 제 일인 양 회원가입에 열을 올렸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미술관에 아르바이트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아트숍 상품을 판매하느냐, 얼마나 회원가입을 유도하느냐에 따라 가장 큰 성과가 걸려 있었습니다. (뭐. 성과금이란 게 요즘 아르바이트생에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없었어요.)

 

5. 내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림자를 드리우고. 레안드로 에를리치.

많은 사람들을 회원가입시키고, 아트상품을 어필한 것은. 그러니까 아무리 같이 일하는 동료가 쉬느라 나랑 교대도 안 해주고 뺀질거려도, 매니저가 회원가입률이 낮다고 구박해도, 아트숍 판매 부진 상품을 어떻게든 어필하라는 압박에도. 제가 2년여 동안 미술관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술작품에 대한 애착과, 그 작품을 관람하러 오는 고객들 때문이었습니다. 흔한 편의점 알바, 프랜차이즈 식당 알바를 하면 별의별 천한 것들을 보게 되는데. 그런 폭넓은 고객층을 보는 돈벌이와는 다르게 미술관은 마케팅 대상이 한정되어 있고, 한정되어 있는 고객마저 매우 신사적이어서 비교적 쉽게 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가요. 같이 일하는 사람만 서로 잘 맞는다면, 어쩌면 미술관 아르바이트는 인생 최대의 아름다운 경험을 주는 아르바이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미술 관련 종사자도 아니고, 전방 지축 아들을 하나 두고 있으니 앞으로도 미술관 직종에서 일할 계획은 제 인생에 없습니다만. 미술관을 방문하는 아이의 시각은 좀 더 느슨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유리에 손 좀 닿았다고 헐레벌떡 뛰어와 안된다고 할 건 없는데... 소리 지르지 말라고 소리 안 지를 아이가 아닌데... 나도 젤리 주면서 노력하고 있는데... 하긴. 다른 사람의 관람 문화를 방해하면 그것도 좋은 일은 못되겠지만요. 저는 아무튼 아들과 전시회를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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