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휴일인 오늘. 갑자기 나를 밖으로 내쫓았다. 그냥 나가라고. 내 아침점심밥은 걱정말고 나가서 바람좀 쐬고 오라고. 그러는 아내에게 나는 짜파게티 하나만 먹고 나가겠다고 했으나, 등을 떠밀면서 나가서 햄버거 먹고 놀고 오란다. 집정리는 자신이 하겠다며.
이렇게 고마울수가. 텅빈 하늘이 내 시간 같은 오전이다. 하늘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나 이래도 되는건가. 그냥 놀아도 되는건가. 그렇게 나는 햄버거를 먹으러 왔다.
10시가 아직 안된 시각. 집에서 1Km는 걸어야 맥도날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맥도날드는 거리적 부담감에 방문 할 수 없었고, 오래전 맥도날드의 먹거리 이슈는 아내에게 굉장히 안좋게 인식되어 있어 딜리버리도 잘 안시킨다.

아침메뉴라서... 너무 아쉬웠다. 맥머핀을 주문하고 보니 주문 중에 10:30분을 넘겼는데, 그사이에 매뉴판이 바뀌면서 햄버거들이 줄지어 전광판을 비췄다. 이런... 취소하고 싶었다. 새해만 되면 늘 먹던 행운버거가 먹고 싶었다.
행운버거는 늘 존재가 없다. 결혼하기전에는, 지나가다보면 늘 추운날씨에 행운버거가 '매운맛'과 '불고기맛'을 홍보하고 있었고, 그냥 한 번 쯤 먹는 심심한 메뉴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행운버거가 너무 먹고 싶다. 연말연초에 컬리후라이와 꼭 먹어야하는 메뉴인 것만 같았다. 꼭 '먹어야만 하는'것으로 바뀐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새해를 미지근하게 보냈던 것 때문이리라. 그저 일상생활에 치이느라, 아이 선물 싸고 산타 코스튬하고 겨울방학을 준비하고. 떡국 끓이고, 잡채 하느라. 새해 기분을 조금 놓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새해 느낌을 홀로 못 느껴 본 것이다.
조금 서글프지만 어쩌겠는가. 이대로 나는 새해를 잊고, 나이도 잊고 열심히 살아가겠지 싶었다.

출입문 근처에서 맥머핀을 먹는데, 흑인 남성이 맥봉지를 들고 콜라를 출렁이며 나간다. 언제 어디서든 맥도날드만 있으면 메뉴에 대한 고민 없이 안전하게 음식을 선택할 수 있어서. 그래서 오히려 선택의 폭이 한정되고, 모든 지구인이 맥도날드 앞에서 맥도날드화 된다는 <세상물정의 사회학>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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