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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사 종교

종교없는 삶. 첫번째. 지나친 전도, 싫증나는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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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학창시절 종교는 강제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기독교에 강요되어 왔으니 그 사실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건 '그냥 좋은 것' 이었습니다. 군대 제대 후. 마침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계획할 수 있는 그때, 종교를 비관적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얼마나 자유롭지 못했나. 교회에 가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렇게 교회를 안 가고 10년이 지났습니다. 이 책으로 인해 종교를 다시 보게 됐고, 비관적으로 봤던 시각을 좀 더 다양하게 보게 됐습니다.

종교에 대해선 겪어본 바가 매우 많고 할 이야기가 정말 많아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세 챕터로 구성해서 진행 했습니다. 

 

1. 지나친 전도. 싫증 나는 기독교

2. 세뇌 되어버린 종교. 무종교인에게 주는 불평등.

3. 종교 없는 삶.


 

종교 없는 삶

저자 필 주커먼

출판 판미동

발매 2018.09.11.

 

지나친 전도. 싫증 나는 기독교

-고모,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는 내가 목회자가 되길 원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해야 했고, 저는 기도원을 운영하는 고모네 집에 얹혀살았습니다. 고모부, 고모, 할머니도 설교를 하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어쩐 이유인지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금식을 하고, 일요일 점심에 식사를 했습니다. 고기와 미역국을 끓여 기도원 사람들과 함께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토요일 밤엔 모두 열성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건강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개인적인 고민들을 위해 방언을 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최근에 고모는 '네가 목사님이 될 줄 알았는데...' 하며 아쉬워하셨습니다.

항상 성경 읽다가 잠드는 어머니도 제가 목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등에 업고 산골 유명한 교회를 찾아가 아들의 성공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휠체어를 탄 어느 외국인 목사가 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데 어머니가 감명받아 기절했던 때입니다. 어머니는 '피아노를 잘 치는 목사님이 그렇게 멋지더구나.' 하며 가끔 지난날을 회상합니다.

저는 교회에 발 길을 끊은 지 오래입니다.

-미션스쿨. 그리고 대학교.

꼭 예배를 참석해야 하는 미션스쿨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성적이 안 좋은 저의 선택지는 고등학교도 같이 있는 이곳뿐이어서 고등학생 때도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일에는 텔레비전도, 과자도, 음악도 일절 금지되었고, 주 중에 급식은 고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 닭고기와 소고기는 있었지만 돼지고기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예배를 수긍하고, 급식을 거부하지 않고, 공부를 못하는 백치였습니다.

입학한 대학교에서는 좀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학기마다 채플 시간이 있었고. 일정 시간을 참가하지 못할 경우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멍청하게도 채플이 있다는 정보는 대학 원서를 내기전에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종교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 제 어리석은 생각이 잘못이었습니다.

 

-시작된 기도.

그건 전적으로 식사 기도의 문제였다. 이렇게 자세히 이 일을 다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얼마 동안은 이 일을 해결하기가 힘들었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있어야 할지 몰았다. 손을 잡는 것은 물론 괜찮았다. 그건 나도 좋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기도는?

-141p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한 고모는 지금도 설교를 하시고, 찬송가를 부르시고, 어르신을 돕습니다. 그런 고모와 저희 가족의 첫 만남은 기도로 시작됐습니다. 식당에서 짤막한 인사 뒤에 고모는 두 손을 모으고 식사 기도를 하셨습니다. 고모는 와이프에게 종교를 묻지 않았습니다. 와이프는 천주교의 성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하지만, 딱히 교회를 가거나 성경을 읽지는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와이프는 눈을 감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 보니 기도 소리가 안 들렸다고 합니다. 고기 굽는 소리와 난잡한 소음 속에서 고모가 기도하는 것을 몰랐던 겁니다. 아이가 울고, 낮술에 취한 어르신이 있었던, 유독 어수선했던 식당 분위기를 회상해보니 납득이 됐습니다. 만약 와이프가 고모의 기도 소리를 들었다면 두 눈을 꼭 감고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그냥 바랐을 겁니다. 저도 그냥 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으니까요. 상대방을 존중하지 못한 기도는 곤욕이었습니다. 기도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기도가 모두에게 좋은 것도 반드시 아닙니다.

-옆집 아주머니의 전도. "교회 나오세요."

저희 아파트 근처 교회에 다니는 옆집 아주머니는 저에게 교회를 나오라고 자주 권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만큼은 아이를 전도사님들이 돌봐주고, 본인은 예배에 집중할 수 있다고. 그러니 쉬는 셈 치고 교회에 들르라고 했습니다. 아이를 둔 많은 엄마 아빠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어 육아하는데 조언도 들을 수 있고 도움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교회에 속하기 싫었습니다. 지루한 교장 선생 말씀 같았던 설교시간과, 점심밥 만을 기다리며 눈을 감았던 학창시절의 길고도 긴 기도를 또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얼렁뚱땅 생각해보겠다고 둘러대고 대답을 보류했지만, 그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에 트라우마가 있어서 저는 교회에 가기 싫습니다."

-길거리 전도.

왜들 그렇게 전도하고 싶어서 안달 난 것일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정말 기독교의 종파를 막론하고 극혐하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에서 어르신이 나눠주는 교회 물티슈를 받자마자 보는 앞에서 차로에 던져버리기도 했습니다. 어르신이 당황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면 그 자리에서 가만히 사나운 눈빛으로 응대한 적도 있습니다. 어느 날은 사람 하반신만 한 높이의 스피커에 바퀴를 달고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내뱉는 아주머니를 지나치며 대놓고 혀를 차기도 했습니다. 집을 방문하며 전단지와 건빵을 돌리는 전도사가 저희 집 문을 두들겼을 때, 웃는 얼굴이 보기 싫어 바로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건빵 봉지에서 전도사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것을 봤을 때. '전도도 영업이구나.' 하며 베란다에 보란 듯이 던져버린 적도 있습니다. 저는 예수 없이 살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간섭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두번째 리뷰도 읽어주세요. :)

 

종교없는 삶. 두번째. 세뇌 된 종교인, 그리고 그들이 주는 불평등.

머리말 학창시절 종교는 강제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기독교에 강요되어 왔으니 그 사실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건 '그냥 좋은 것' 이었습니다. 군대 제대 후. 마침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계획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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