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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식물을 키우는 것, 나의 집을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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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은 꽃이 좋을까. 식물이 좋을까.

 

베란다에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좋은 일일까요? 저는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생각해왔던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가 바로 식물 키우기입니다. 연애시절, 프러포즈하기 전부터 곧 잘 저는 지금의 와이프에게 꽃 대신 잘 시들지 않는 식물을 선물하곤 했습니다. 꽃은 당시에만 의미가 있을 뿐 금방 시들어버리기도 하고, 말라버린 꽃은 처신하기도 애매합니다. 물론 거꾸로 말려서 드라이플라워로 만들어 인테리어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선물한 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테리어로 활용하다 보면 조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스투키

 

 

식물 선물로는 다육식물도 좋습니다. 흔히들 스투키 많이 선물 하시죠. 신장개업했을 때, 혹은 집안에 습도를 적절히 유지시키거나 먼지에 관련된 이슈에도 이런 다육식물은 인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시겠지만 이런 식물들의 특성을 한껏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식물들이 마치 식물원처럼 어마 무지하게 많아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엔 결과는 미미합니다. 게다가 스투키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 기우에 맞는 식물이 본래 아니기 때문에, 선물 받은 그대로 쑥쑥 늘어나면서 크지 않고, 옆쪽으로 새로운 싹을 트면서 미관상으로 봤을 때 너저분하게 큽니다. 계속 잘라서 키우다가 결국 포기하게 되는 것이 스투키입니다. 혹은, 그마저도 못하신다면, 식물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저희 집에는 와이프에게 선물했던 행운나무와, 작년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했던 작은 전나무가 있습니다. 행운나무는 길이가 손바닥만 했고, 근처 마트에서 3천 원을 주고 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벌써 제 아이의 키만큼 훌쩍 커버렸습니다. 전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하기엔 너무 작았지만, 그래도 아기자기한 백열전구들로 장식해서 해를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들과 와이프에게 등한시되어버린 저 식물들은 그저 저만 관심이 있습니다. 물 주고 가지 치고, 화분 닦고. 제가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좀 특별합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다육식물을 월세방에 놓은적이 있습니다. 그때 돈이 없어서 반지하에서 생활했는데, 감사하게도 햇빛이 아주 잘 들어오는 반지하방이어서 곰팡이가 전혀 없었습니다. 마당도 따로 있는 전원주택이어서 차들이나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았고, 저만 친구들 불러놓고 술 마시지 않는다면 아주 조용한 가구였던 겁니다. 거기서 작은 다육식물을 키웠는데, 밤이나 낮이나 해를 받으니 어찌나 빨리 자라 던지. 별로 관심 갖지 않았는데 쑥쑥 커버리니까 뿌듯한 겁니다. 거기에 둘, 셋, 넷, 다섯 종류의 다육식물을 놓고 작은 동물 피규어나 레고를 두고 꾸미기까지 하고, 이색적인 화분을 찾아 유리병에 화초를 놓고 천장에 매달아서 키우기도 했습니다. 점점 반지하 월세방은 식물원 비슷하게 변했습니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고양이를 키우는 것과도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정해진 습도, 물 주는 시기, 날씨의 변화에 따라 화분을 각각 다르게 비치하고, 시들면 더 이상 회생하지 못할까 봐 너무나도 조마조마했던 하루들이 많았습니다. 

 

테라리움

 

그렇게 집안 곳곳에 식물이 자리를 잡으니, 식물만 단아하고 집은 난장판이어서 집을 또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지하가 정리하면 뭐 얼마나 정리된다고 그때 그렇게 열심히였나,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피식합니다. 똑같은 처지에 제 친구도 반지하에 살았는데 방이 삼각형이어서 까무러치게 웃은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정리하려고 해도 삼각형인 방에서는 깔끔하게 정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보통의 반지하라서, 그나마 뽀송뽀송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깨끗하고 말끔하게(그나마) 정리된 자리에 식물은 평안해 보였습니다. 노을 진 저녁에 주황색으로 물들어진 작은 다육식물을 보고 있자면 오늘 하루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는데 또 왜 이렇게 세상 풍파가 다 지나간 것 마냥 평온한지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집안에 식물을 들인다는 것은 비로소 그런 것 같습니다. 식물을 키운다는 목표, 다짐 자체가. 내 집을 여행하면서 살겠다는 의미 아닐까. 그러니까 더 이상 집을 난장판으로 하지 않고, 그저 자고먹고 출근하는 숙박용이 아니고, 그래도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라 할 지라도 내가 인생에서 거쳐가는 곳 중 하나이니까 소중한 보금자리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식물은 그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하여 지금 사놓은 전나무와 행운나무는 저의 아이가 클 때까지 계속 키울 것이고, 또 클 것이며. 미래엔 제 전원주택 마당에 심어놓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땐 성인 남녀의 키보다 큰 크리스마스 트리를 직접 장식해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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