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 싫고 공부하는 건 더 싫은 택일. 그를 계속 재촉하는 엄마. 결국은 나가서 살겠다며 집 밖으로 뛰쳐나왔는데. 만 원짜리로 가장 먼 곳으로 도착한 곳은 군산에 장풍반점이라는 중국집. 거기서 짜장면을 먹고 난 뒤 우연히 숙식 제공이 되며, 배달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문구를 보고. 택일은 그곳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여기서 택일은 정체불명 단발머리 주방장 거석이 형(마동석)을 만나게 된다. 다시 돌아오라는 엄마의 연락. 엄청난 파워를 가진 거석이 형의 미친 존재감. 택일은 장풍반점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을까.
너의 바람은 뭐야.
영화 <시동>에서는 진로에 관한 대화가 계속 화두로 남는다. 주인공이 꼭 해보고 싶은 소망은 무인도에서 엄마와 함께 지내보고 싶다는 희망이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희망은 영화에서 아주 잠깐 비칠 뿐이다. 현실에서의 바람은 모두 돈으로 얽혀있다. 알아서 살아간다고 포부하고 나와 종착지는 우연히 들어간 중국집이었고, 거기에서 첫 월급을 받은 주인공은 감격하지만 이내 첫 월급에 중요성은 빠르게도 흩어진다. 장래희망이 직장으로 부결되는 우리 상황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배구 선수를 포기하고 아들과 함께 사는 엄마는, 일찌감치 꿈과 직장을 잘 구별하고 있다. 엄마는 직장을 무관하고 돈벌이가 된다면 무엇이든 닥치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토스트 가게는 사실 엄마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님에도, '엄마 일은 엄마가 알아서 한다.'라며, '너는 돌아와서 얼른 공부나 하라.'라고 다그친다. 아들이 공부를 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 더 바라는 것은 아들이 집에 들어와 자신과 함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울리는 일이 어디 있어. 그냥 하다 보면 그 일이 어울리는 거야.
동화(윤경호)가 사채업을 상필에게 알려주는 상황에서, 선임인 동화는 이런 말을 한다. '어울리는 일이 어디 있어. 그냥 하다 보면 그 일이 너한테 어울리는 거야.' 용기를 갖고 다시 시작하라는 말. 돈 벌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냐는 말. 거창하게 보면 돈과 도덕을 바꾸는 이 말은 나중에 본인의 행동으로 아이러니에 도달한다. 후에 동화는 사채업을 그만두고 치킨집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도 일은 열심히, 또 보람차게. 그리고 꿈은 따로 갖고 있을 영화 바깥에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내가 이런 거 하고 살아
본인의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거석이형은 가라오케에서 신나게 칼싸움을 하고, 피가 철철 흐르며 조폭 동생과 차를 타고 귀가한다. 귀가 중에 갑자기 차를 세워 들어간 곳은 다름 아닌 중국집. 주방장에게 웍을 빌리고 난데없이 요리를 하는데, 생전 처음 요리에 대한 조언을 거기서 듣는다. "웍에 너무 힘을 주네, 주금 힘을 빼요." 그는 머쓱하다. 그래도 하고 싶은 요리를 해서 좋은지 쑥스럽다. "내가 이런 거 하고 살아. 너 짜장면 좋아했잖아. 이거 한 번 먹어봐." 거석이형이 짜장면을 맛있게 먹기도 하지만, 옛 조폭시절에 함께했던 동생에게 자신의 짜장면을 보여주고 싶은 수줍음도 곁들여 있다. 실력 좋았던 조폭생활도 자신의 일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나오는 것이 맞았고. 비단 고되고 힘들더라도 새로 시작하는 요리가 재미있으면 그것은 직장이어도 꿈이 되었다. 오로지 거석이형에겐 그랬다.
하지만 누구도 당신의 일과 꿈을 단정 지을 수 없다.
어쩌면 일과 희망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희망사항을 직장으로 선택하는가. 또는 장면으로 선택하는가. 그 꿈을 꾸는 것은 본인의 자유라는 걸 영화가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에 있는 밤까는 장면은, 소박하지만, 어쩌면 캐릭터 중 누군가가 그토록 바라던 장면 중에 하나 아니었을까.
고로 누군가의 희망을 하나로 단정 짓기 어렵다. 나의 희망이나 너의 희망도. 마찬가지다. 여행이 될 수 있고, 직장이 될 수 있고, 장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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