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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고집하지 않아도 결국 세번째 몰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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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한, 모아놓은 몰스킨 다이어리.

2013년부터인가. 문구에 관심이 생겼다. 아니 훨씬 그 전부터 고등학생때 친구가 빌려준 샤프 하나 때문에 시작되었는데, 5,000원짜리 제도 샤프였다. 샤프가 1,000이 아닌게 이색적이었고, 얼마나 좋길래 그럴까 사용해보니, 별로 좋은건 없었다. 시간이 지나 특히 다이어리에 관심이 갔는데, 2013년도 어린왕자 특별 에디션 한정판 다이어리였다. 그것도 사실 마음에 딱히 와닿진 않았다. 별로 멋있지도 않았는데, 굳이 왜!? 왜 산걸까. 들고 다니기 있어보이려고 산 걸까. 5만원이 호가하는 다이어리는 지금 내곁에 없다. 그러나 열심히 뭔가를 끄적인 기억만 남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끌린다. 그러고 매년마다 나는 각종 다이어리를 궁금해 했고, 이것저것 샀지만, 또 이것저것 사은품으로 받아봤지만, 결국은 다시 몰스킨으로, 또 어떤 콜라보가 아닌 일반 몰스킨으로 돌아오곤 했다.

물론 다 쓰지도 않고 형식에 맞춰서 쓰지도 않는다. 세계지도가 보이는, 영어가 가득한 이 몰스킨을, 게다가 데일리 플랜 다이어리는 마일매일 계획을 새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부담감이 느껴지는 속지 디자인이다. 그냥 유선으로 살 순 없었을까. 모눈으로, 또는 무선으로 살 순 없었을까 생각하니, 그것보다도 이상하게 데일리 다이어리가 관심이 갔다. 영 이상하다. 그리고 하드 커퍼, 소프트 커버를 선택할 수 있겠지만 오로지 나는 소프트 커버를 사랑했다.

날짜에 맞춰 쓰다가도 한 번 다이어리를 안열면 한 페이지가 그대로 건너뛰어지는 이 몰스킨 데일리 다이어리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계획을 세워야할 것 같은 불안감. 그리고 공백을 채워야 할 것 같은 의무감. 그러나, 그 강박에서 벗어나려고 생각해봤다. 공백은 낙서장처럼 사용하고, 다이어리를 편 날짜에 내 계획을 또다시 기록한다. 또 안열고 방치하는 나날이 계속 된다. 그리고 어느날 다이어리를 펼치면 무한한 공백을 낙서장으로 채우다가, 또 정해진 날짜에 계획을 새운다. 그렇게 사용하다보니, 어떤날은 계획이 있고, 어떤 날은 계획이 없는, 불안정한 내 삶이 그대로 느껴지는 다이어리가 완성되고, 절반즈음 다이어리를 사용하다보면 소프트커버의 빈티지와, 손때 탄 흔적의 다이어리를 보게 된다.

많은 예술가가 애용했다던 몰스킨은, 그 예술가들처럼 나에게 영감을 선사하진 않는다. 하지만 사람됨을 느끼게 하는 다이어리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어쩔때 완벽하고, 터무니 없이 불안한 내 삶과, 쓸때없는 허영심을 말해준다. 그리고 내년에는 좀 더 잘 사용해보자고 다이어리를 구입해본다.

또 다이어리에 각인하고 싶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스티커도 잘 활용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가지 색색펜으로 예쁘게 꾸미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은 겨우 깎은 HB연필과 기본으로 들어간 스티커로 간신히 계획을 세우고 낙서를 할 것이다. 이런 생각만으로 나는 계속.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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